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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너붕붕 나 약혼했어. 제발 그러지마.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앱에서 작성
ㅇㅇ
24-03-05 01:56
“내가 널 많이… 좋아했어. 좋아하고.”
“티미, 제발.”
나는 오랜만에 재회한 첫사랑과 이런 만남이 될 줄이야 상상치도 못했다. 나랑 티모시는, 학창시절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난 그를 사랑했다. 감정은 일방통행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우정을 지키는 데엔 좋았다. 성인이 되고, 티모시는 여전히 뉴욕에, 난 다른 곳에 정착했고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연락이 더뎌지는 건 당연했다. 우린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인간관계를 다져갔고 서로에게 전보단 소홀해졌다.
전만큼 자주 만날 순 없었지만 우린 간간히 만나다가 파리로 떠났던 출장에서 내 소지품을 도난 당한 후 연락처를 모두 잃었다. 나는 SNS를 활발히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티모시를 찾을 방도도 없었다. 뉴욕에서 떠나온지 오래라서 연락을 오래 이어가는 뉴욕 친구도 없었다. 나는 워낙 바쁜 사람이었고, 몇명을 제외하곤 연락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티모시와는 연이 끊겼다.
뉴욕에 출장을 가야했을 때 바쁜 와중에 학교 근처도, 둘이 자주 가던 베이글집도, 공원도 가봤지만 이 넓디 넓은 뉴욕에서 우연히 만나기란 어려운 법이지. 성인이 되고나서도 그를 사랑했고, 어린 나이에 일찍 취업에 성공해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를 잊지 못했다.
그렇지만 티모시를 만난지도, 연락을 한지도 오래되었기에 그를 향한 사랑이 오래 가긴 힘든 법이었다.
전화도 받아야 하고, 커피도 들어야 하고, 짐도 잔뜩 챙겨야 됐던 허둥지둥하던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 이게 우연인거지. 뉴욕 한복판에서 첫사랑을 만나는 건 환상이고. 그렇게 만난 남자와 결혼까지 약속했다. 그는 사랑스럽고, 나를 지지해주고, 뉴욕에 깊은 애착이 있는 나를 위해 거주지를 뉴욕으로도 옮길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길 한복판에서 첫사랑을 만나는게 우연으로 되긴 되더라. 몇주간 진행된 프로젝트를 겨우 마치고 밤샘으로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해 칩거를 하려다가 뉴욕으로 떠났다. 약혼자도 나도 바쁘니까 휴가를 같이 맞추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나 혼자 뉴욕행을 하기로 했고, 정말이지 약혼을 한 상태에서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운명같았다.
“나 아직도 뉴욕에서 지내! 너만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지내. 정말 보고싶었어, 허니. 정말, 진심으로 보고싶었어.”
은은한 코튼향을 잔뜩 머금은 그가 나를 꽉 껴안았다. 그가 껴안을 때 느껴지는 몸이 제법 전보단 두꺼워진 것 같았다. 티모시 집에서 지내고 싶었으나, 큰 돈 주고 예약한 호텔이라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놀랍게도, 티모시의 집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내가 계획했던 솔로 휴식은 아니었지만 더 좋았다. 그토록 보고싶던 첫사랑이니까.
간만에 하는 대화는 정말이지 수다스러웠다. 나도, 티미도. 나는 일에 치여 ‘피곤해. 힘들어. 배고파. 머리아파.’ 외엔 말을 못하게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에게 첫 출장이자 해외출장에서 생긴 짐 도난사건을 얘기해주면서 연락이 왜 끊기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내 번호 안 외웠어? 섭섭하네. 장난스레 말하는 그에게 답했다. 즐겨찾기로 전화했는데 어떻게 외워.
그리고 그에게도 약혼 소식을 전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행복도 전하고 싶었다. 그래, 그 반지가 단순 커플링은 아닌 것 같았어. 그가 말했다. 네가 날 좋아한 걸 알아. 나는 순간 멋쩍어서 할 말이 없었다. 티가 많이 났었구나. 그럼에도 나와 친구를 계속 한 티모시가 신기했다.
“내가 널 많이… 좋아했어. 좋아하고.”
“티미, 제발.”
“그땐 어렸고 내가 감히 너랑 영원을 약속할 수 있을까 겁나서 그 감정을 무시하려 했는데. 네가 뉴욕을 떠나고, 연락이 힘들어지고, 마침내 연락이 끊겼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만해.”
“널 다시 볼 방법이 없나 너무 궁금하고 미칠 것 같았는데…. 네 반지가. 나도 내가 지금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알아. 그렇지만 너, 너도 날 사랑하잖아.”
“티모시, 나 약혼했어. 제발 그러지마.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10년이 넘도록 전부터 듣고 싶었던 말을 약혼하고 나서야 듣는다고? 이 상황을 미치도록 피하고 싶었다. 티모시는 진득한 시선으로 날 옭아맸다. 정적이 이토록 시끄러운 것이었나.
나는 왜 뉴욕에서 티모시를 만났다고 약혼자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 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오늘 아침 나갈 준비를 하면서 반지를 매만졌을까. 나는 왜 그 앞에서 볼을 붉힐까.
“사랑해, 허니. 너도 날 사랑해?”
나는 왜 그 말에 부정을 할 수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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