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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 가렛너붕붕 도련님과 하녀앱에서 작성
ㅇㅇ
24-02-27 02:24
바람이 휭 하고 옷깃을 흔들었다. 나는 석유등을 높게 치켜들며 외쳤다. "누구야?" 가끔 남자 하인들 중에 그런 놈들이 있었다, 여자들이 묵는 숙소에 와서 더럽고 추잡스러운 짓을 하려는 놈들이... 겁먹은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2층과 3층에는 하녀애들이 잠들어있으니 내가 소리를 지른다면 금방 내려올 것이다. "얼굴을 보여!" 그러자 달그락, 하고 나무그릇이 가볍게 부딫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보인것은 더러운 발이었다. 아주 작았고, 발톱이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어린애?' 내가 한발자국 다가서자 수상한 아이는 뒤로 물러났다.
"누구니?"
어른이 아니라면, 날 위협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두렵지 않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몸을 숙였다. 노란 가스등 불빛이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허공에 번졌다. 아, 어린애가 맞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헝클어진 머리에 잔뜩 경계하는 얼굴을 한 사내아이가 어둠속에 서 있었다.
"배가 고파?"
그 애는 오른손에 주먹만한 빵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니? 아버지는?"
이곳, 헤드룬드성에는 사용인들이 아주 많았고 그 이들의 아이들도 많았다. 배가 고파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던걸까? 그러나 아이는 대답대신에 이를 내보이며 털을 세웠다. 그래봤자 가슴팍에도 못오는 아이라 무섭진 않았지만.
나는 그 애의 행색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른 볼에 지저분한 차림이 그다지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 같지는 않았다. 더 캐묻는 대신에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계속 거기 서있을거야? 앉으면 달걀을 삶아줄게."
그러자 아이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우물쭈물대는듯, 빵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다 결국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는다. '어린애 다루는거야 쉽지.' 나는 숨죽여 웃으며 윗층의 눈치를 보다 달걀 하나를 삶았다. 그 애는 내가 화덕에 불을 붙이고 작은 냄비에 달걀을 넣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안절부절 못하다 벌떡 일어나서는 물이 끓기 시작한 냄비에 손을 뻗으려 했다. 나는 몹시 놀라 그 애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얘가! 다치면 어쩌려고!"
저를 걱정해주는건데 그저 손등을 맞은것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날 올려다본다. 그러고보니 눈이 참 크다, 잘 씻겨서 예쁜 옷을 입히면 참 귀여울텐데. 문득 동생이 떠올랐다, 그 애는 여자아이고, 이 아이보다 키도 컸었지만 어딘지 까칠한 느낌이 닮았다고 해야하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쓱 넘겨주었다. 계란만 멍하게 보고있던 아이는 내 손길에 몸을 파드득 떨며 놀라더니 문득 눈동자만 올려 내 손을 확인하자 기겁을 하며 뒤로 넘어졌다.
쿵!
"하하하!"
아이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미안해, 귀여워서 그만."
나는 그 애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쑥 일으켰다. 그 애는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몹시도 수치스러웠는지 그르릉, 하고 고양이처럼 작은 소리를 냈다. 그것도 내가 뜨거운 계란을 솜씨좋게 앞치마에 감싸쥐자 금방 멎었지만.
"안돼! 아직 뜨거워."
여행자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처럼, 그 애는 얄팍한 팔을 휘둘러 내 손에 들린 달걀을 빼앗기 위해 애썼다. 나는 껍질을 까며 깔깔 웃었다. 귀여워 죽겠네 정말.
"자, 여기있어. 뜨거우니까 조심해... 어머."
조급하게 재촉하던 아이는 기어이 달걀을 받자마자 한입에 삼켜버렸다. 입안이 달걀로 가득차 모양새가 우스워졌다. 그러건말건 입을 오물거리다가, 역시 뜨겁긴 했는지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나는 달걀 삶은 뜨거운 물을 컵에 따라 마시면서 그 모습을 유쾌히 구경했다.
저녁의 짧은 티타임은 그렇게 끝났다. 그 애는 쭈뼛대면서 날 올려다보더니 후다닥 정원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어쩐지 편치 않은 심경으로 그 뒷모습을 막막하게 바라봤다. 부모가 누구길래 저런 어린애를 이 밤에 방치했을까, 그러나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문을 닫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는 그것이 끝인줄로만 알았다.
"뭐라구? 가렛 도련님의 숙소?"
"쉿! 조용히!"
하녀장이 주의를 주자 계단을 벅벅 문질러 닦던 애나벨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 그렇게 됐어.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빠르게 속삭였다. 애나벨은 복잡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주인가족의 직속 하녀가 된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영광이었다, 짭짤한 기회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 경우엔 달랐다.
가렛 도련님은 주인님의 사생아였다.
"마님이 그 분을 얼마나 미워하는데, 너 큰일 난거야.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구."
"그럼 싫다고 난동이라도 피우리?"
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담담하게 말은 했지만 사실 가장 불안한것은 나였다. 그냥 하녀일만 하는거라면 그나마 덜할텐데, 가렛 헤드룬드는 특히나 포악한 꼬마로 이름이 높았다. 소문으로는 그 어린애가 하인 두명의 장딴지를 이빨로 다 씹어놓았다지, 입도 짧아서 먹을 때가 되면 욕을 하고 발광을 한단다. 헤드룬드 성에 온지는 이주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승진을 질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노한 마님은 사생아가 평범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것조차 견딜 수 없다는 듯 굴었고, 성격나쁜 도련님은 안그래도 없는 하인들마저 포악을 떨며 쫓아내버렸다. 나도 성격나쁜 도련님 손에 절단나거나 성격나쁜 마님 손에 쫓겨나겠지. 그래도 마님 손에 쫓겨나면 다행이다, 추천장은 써줄테니까.
"따라와, 앞으로는 도련님이 머무는 별관에서 잘테니까."
하녀장은 그날 밤에 짐을 모두 챙기게 시키고는 그대로 날 끌고나왔다. 같은 방을 쓰는 애나벨이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양손으로 짐가방을 쥐느라 마주 인사해줄 정신도 없었다... 하녀장과 나는 미로처럼 얽힌 거대한 장원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 뒤, 큼지막한 못을 지나 더, 더, 더.
"여기가..."
그 2층짜리 건물은 별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다소 황송할 규모였다. 돈 깨나 있는 사냥터지기의 오두막 같다. 실제로도 뒤로 이어진 깊은 숲을 목전에 두고있기도 했다. 담쟁이 덩쿨이 썩어가는 벽과 기둥 위로 손발을 뻗고 있었고 마당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공터에는 잡초와 들꽃이 들쭉날쭉하게 피어있었다.
하녀장은 존경심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는 모습으로, 문을 덜컹 열더니 날 들여보냈다.
"잠깐만요, 하녀장님!"
"아무 방이나 쓰도록 해. 도련님이 쓰는 방만 아니면 괜찮으니까."
쿵.
나는 닫힌 문만 멍하게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밖에서 볼때도 을씨년스러웠는데, 내부는 더 엉망이었다. 마지막 계단참 두개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카펫은 제 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러웠다. 정말 이곳에 아이가 산다고? 나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가렛 도련님의 나이를 셈했다. 열넷 먹은 소년. 그정도라면 그래도 제법 컸을것이다. 여전히 열약한 환경이긴 했지만.
그러나 곧이어 계단을 타고 나타난 소년때문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네가 가렛 도련님이니?"
경황없이 내뱉어놓고 존대를 했어야 했다는걸 깨달았지만 그 애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나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그렇구나, 이 애가 도련님이구나. 나는 누굴 동정할 처지도 못되면서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날 가렛은 바짝 털을 세운 들짐승 같기는 했지만 온순하고 말도 잘 따르는 아이였다. 소문과는 달랐다. 열넷은 커녕 겨우 여덟아홉 정도로나 보이는 모습도... 나는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깨져있는, 더럽고 작은 발이 보였다. 그는 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여전히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리 내려올 수 있겠어요? 저녁은?"
도련님은 고개를 젓더니 타다닥 소리가 나게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아랫마을 장난꾸러기들도 이렇게 품위없이 내려오진 못할것이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갔다.
"그러면 같이 먹을까요? 저도 못먹었거든요..."
늦여름이 끝나고 가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그 동안 나는 부서진 계단참을 고치고, 더러운 카펫을 빨았다.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집안 이곳저곳을 고치는것은 덤이었다. 단풍잎이 떨어질 즈음에 도련님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 고백했다.
"내, 내, 목소, 리가, 듣기, 싫다고, 음."
"도련님 목소리는 정말 예뻐요."
"마, 말도, 더듬, 잖아."
"끊어 말하니까 이해도 더 잘되는걸요."
그는 뒷편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씻기고 입힌 도련님은 그제야 조금 '도련님' 처럼 보였다.
"날 하녀로 데려온건 어떻게 한 거에요?"
나는 치마를 걷어올리며 대야 안으로 발을 딛었다. 가렛은 멀뚱하게 내 종아리를 쳐다보다 조용히 말했다.
"남작, 님, 한테, 말했어."
"남작님이요?"
"으, 응. 네, 가, 달걀을, 젓, 졋, 줬다고..."
마냥 방치한 줄 알았더니, 그래도 이야기는 하나보지? 나는 냉소를 삼키며 이불을 세게 밟았다. 도련님은 여전히 멍하게 내가 빨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 나도..."
"도련님도 하고싶어요?"
나는 조금 고민하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무료하게 턱을 괴고있다 신난듯이 방긋 웃으며 달려왔다. 나는 먼저 그의 발을 씻기고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넣어 대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그러자 신나있던 도련님이 정색을 했다.
"나, 나를, 자꾸, 번, 쩍, 번쩍, 들어."
"어머, 그러면 안되나요?"
"나, 나는, 여얼넷, 이야."
"도련님이 저만큼 키가 커지면 그만 할게요."
"너는, 며, 몇살인데."
"저는 열일곱이지요."
그는 바라던 대야에 발을 담구고서도 생각이 팔린 얼굴로 조용히 되뇌었다.
"열일곱..."
나는 문득 열일곱의 도련님을 상상했다. 그는 몹시 작았지만 요정처럼 귀여운 소년이었다. 열넷인데 여전히 이렇게 작으니 어른이 된다고 더 커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열일곱이 되면 키가 조금쯤 더 클까? 말을 더듬는것은 그만두게 될까?
...나는 그가 자라는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을까?
나는 치맛단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함께 겨우 한번의 계절만 지냈을 뿐인데, 벌써 가렛에게 흠뻑 정이 들어버렸다. 사랑스러운 소년. 어쩌면 나는 그에게서 가엾은 내 가족을 겹쳐보는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그를 동정하는 걸지도. 그러나 분명한것은 그에게 마음이 쓰인다는 것이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을정도로.
"...자, 도련님은 왈츠 추는 방법을 아세요?"
"왈, 츠?"
생각보다 빨래가 재미없었는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내가 서슴없이 손을 잡아오자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개의치않고 말을 이었다.
"모름지기 신사라면 왈츠 추는 법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아가씨들과 춤을 출 수 있거든요."
"너, 너도, 춤을, 춤을 춰?"
"몇번 춰봤어요."
도련님은 다시 심통난 얼굴을 했다. 나는 그가 귀여워 그의 손을 내 허리에 두르게 만들었다. 허리에 감긴 손이 꼼지락대는것이 느껴졌다.
"뿔내지 마세요, 도련님도 곧 아가씨들이랑 춤을 출테니까."
"나, 난, 너랑, 추, 고, 싶어."
"어머, 영광이네요."
나는 입으로 몇번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도련님은 그 동안 내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박자에 맞추는거에요,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다 쉽답니다."
한참 그렇게 장난을 치는데 바람이 불며 단풍잎이 흩날렸다. 도련님의 발가락은 물에 오래있어 쭈글쭈글하게 변해있었고, 나는 그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것이라고 장난을 치며 겁을 줬다. 그날 밤에는 감자로 만든 스튜를 먹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
나는 양말에 목도리와 코트까지 걸치고도 침대에 누워 벌벌 떨고 있었다. 주인들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 남부의 별장으로 떠났지만 악독한 마님은 떠나기 전까지 집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땔감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나는 급한대로 도련님의 방에만 불을 넣고 이렇게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끼익-
"허니이.. 자?"
"안자요, 왜요?"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 이상한 몰골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얼핏 속상한 표정이 스쳤다.
"내, 내, 방에, 와."
"그건 안돼요, 혼삿길 막힌다구요."
"누, 구?"
"우리 둘 다요!"
도련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얼어 죽겠는데 말이지.
"명, 령, 이니까, 이리, 와."
그는 몇주전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니, 내가 우리는 신분 차이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하자 한참 짜증을 부렸다. 어린애들이 엄마를 따르는것과 비슷한 거겠지. 나는 그를 달래기 위해 그는 내 주인이니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참 씩씩거리던 가렛은 그 개념이 제법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이후로도 억지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명령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다. 실상 말만 명령이지 다 날 위하는 것들 뿐이었지만.
나는 이를 딱딱 부딫이며 문가에 선 자그마한 소년을 째려봤다. 그래, 열넷이라지만 저렇게 작은데 뭐. 나는 당장 동사할 판이고...
나는 못이기는척 도련님의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그가 킥킥대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해?"
"네? 자야지요."
그리고 나는 그의 방 카펫 위에 요를 깔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당장 귀신이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정도로 을씨년스러웠던 방은 나의 노력덕에 제법 포근한 분위기를 갖고있었다. 이 카펫도, 당장 겨울 시작전에 빨았던 것 아닌가. 그러나 가렛은 고개를 젓더니 나를 침대 위로 끌어당겼다.
"여, 여기가, 더, 따뜻, 해."
그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다는듯 허겁지겁 내 외투를 벗겼다. 나는 난로에서 먼 카펫과, 난로 바로 옆에 있는(내가 끌어다 옮겼다)침대를 번갈아보다 어차피 들어온 방 혼사는 애저녁에 막혔다 싶어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가렛은 목에 둘렀던 목도리를 느릿느릿 풀고 있었다.
"점..."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나는 문득 그가 몹시 열중한 얼굴로 내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외투와 목도리는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가벼운 슬립밖엔 남지 않았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점이 난 부분을 덮었다.
"평소엔 안보이죠? 전 사실 점이 많답니다."
말해놓고 어딘지 이상하게 들렸음을 깨달아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난로의 노란 빛이 울렁거리는 탓인지 도련님의 얼굴도 조금 발그스레해보였다.
"어, 어디에, 있는데."
"그, 그야 옷 안에..."
"..."
'분위기 왜이래!'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후다닥 이부자리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도련님은 조금 있다 등을 돌리고 누웠다. 왜소한 등을 보자니 동생 생각이 나서 방금의 어색한 기분이 씻겨 나가는것만 같았다. 나는 장난치듯 그의 목뒤에 난 작은 점을 콕 찔렀다.
"도련님도 여기에 점이 있네요."
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왜인지 원망스러운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자, 잠이나, 자!"
나는 숨죽여 웃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막 의식이 미지근한 영역으로 넘어갈 즈음에, 부드러운것이 입술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내가 침대 바깥으로 끌려나온것은 겨울이 끝날 즈음이었다. 머리채를 붙잡아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 친것은 하녀장이었다.
"천한것이!"
그는 내 양팔을 다른 고참 하녀들 시켜 잡게 하고는 연거푸 뺨을 갈겼다. 바로 옆자리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던 도련님은 경악해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다른 하인들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슬립만 입은채로 멍청하게 뺨을 한대 얻어맞고는, 두대, 세대, 네대를 맞으며 이게 현실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남자 하인들이 울부짖는 도련님을 잡아누른채 슬립만 입은 내 몸을 핥듯이 지켜보고 있었고, 입술이 터져라 갈기는 손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끝이구나. 도련님과의 끝이구나.
"허니!"
비참한 꼴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보낸 집에서 끌려나가는동안 내가 들을 수 있었던것은 도련님이 그렇게 비명지르는 소리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울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다. 어차피 겨울이 끝나면, 주인들이 돌아오면 어떻게든 끝날 운명이었으니까. 소문보다 오래 있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니 도련님은 더이상 날 떠올리지 말고 잘 살아가야해요. 내가 가르쳐준대로 빵을 굽고 옷을 빨고 신발끈을 여미면서... 난 그렇게 다정한 작별을 하고 싶었다.
막 봄꽃이 필 시기인데 날은 여전히 추웠다. 나는 몸을 떨며 그들이 마지막 동정처럼 던져준 옷가지를 걸쳐입었다. 대문은 굳게 닫혔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때 누군가 멀리서 급하게 뛰어왔다. 애나벨이었다.
"흐윽, 가, 가는거야?"
"...그래야겠지, 아마도."
대꾸를 하면서도 내 눈은 아름답고 웅장한 저택 너머 가려진 초라한 2층집을 찾고있었다. 애나벨은 넋이 나간듯한 내 얼굴에 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가 들려준 내 짐가방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가져왔어?"
"별관에 갔더니... 도련님이 급하게 짐을 싸고 계셨어."
"별다른 말은 없었니?"
"너, 너 정말 도련님이랑.. 그렇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마. 너까지..."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애나벨은 어쩐지 질린 얼굴이었다.
"그분 표정 정말 이상했어, 미친 사람처럼..."
"나한테 정을 많이 붙이셨을테니까...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으응?"
"내가 떠났으니까 많이 외로워하실거야, 너가 조금만 챙겨줘."
애나벨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쳤다. 나는 당시 그것이 주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만 지레짐작했다.
"몰래라도, 주인들 눈에 띄지 않게... 부탁할게. 나까지 없으면 어떤 대접을 받을지 몰라."
"...알겠어. 그정도는..."
그는 떠나는 내 손에 쪽지를 쥐어줬다. 수도에서 음식점을 한다는 고모의 주소였다.
"직원을 찾고있데, 편지 보내면 널 받아주실거야."
"...정말 고마워."
목이 메였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격려가 되었는지. 그렇게 나는 헤드룬드성을 떠났다. 작고 사랑스러운 도련님을 걱정하며.
"허,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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