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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지개 너머에선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앱에서 작성
ㅇㅇ
24-04-01 02:09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의 흔적을 만나면 꽤 반갑다. 시즌을 마치고 마음이 맞는 몇 명의 팀 동료와 자원 봉사차 함께 간 곳에서 당신의 사진을 보았다. 시설의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준 후인지 땀범벅이 되어 체육관에 발라당 누워있는 사진, 제법 멀끔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찍은 단체 사진.
체육관에 누워있는 사진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멀티미디어 전송을 한다. 수신인은 미츠이 히사시.
[10년 만에 만난 파김치 밋치]
빨간 머리 후배가 잘 쓰던 애칭을 써가며 토독토독 버튼을 눌러 메시지를 전송하고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우주 최고 미남을 만났네.]
제법 뻔뻔한 답장에 피식 웃어버린다.
*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꼼짝없이 앓아누웠다. 이번 시즌은 유독 힘들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매 경기 접전을 벌였고 감독은 단 한 번도 주전에서 나를 뺀 적이 없다. 장애 시설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은 매년 해오던 일인데, 이번 시즌에 너무 체력을 갈아 넣었던 걸까. 아니면 이제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환절기 탓일 수도 있다. 따스한 곳에서 나고 자라 중학생 때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 해가 지날수록 추위는 견디기 힘들었고, 그때 마침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제 고향 만큼이나 따스한 미국 서부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모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계절이 바뀔 무렵을 잘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환절기가 되면 유독 몸이 무겁다. 시즌 중에는 팀 주치의와 상의해 적절하게 체력 훈련을 하곤 했다. 전에는 몇 년에 한 번 정도 감기에 걸렸었는데, 이제는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전보다 감기에도 쉽게 걸린다. 반나절을 꼬박 누워만 있었다. 일단 지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덮어두고 잠만 잤다. 어젯밤부터 울리던 핸드폰은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저녁쯤에는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며 뒤척이는데, 철컥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엄마와 안나,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나. 생각하며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데 거실 불이 켜졌는지, 방문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미야기!"
귀에 익은 목소리를 한 남자가 제법 무례하고도 배려 없이 침실의 문을 열었다. 갑자기 쏟아진 빛에 눈이 시려 눈을 꼭 감았다. 성큼 대며 걸어온 남자가 무심하게, 예고 없이 찬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아픈 거냐? 아, 열이 조금 있네."
조심성 없고 무심한 행동을 금세도 배반하고 꽤 다정한 손길로 일으켜진 몸을 침대로 다시 눕힌다.
"뭐 좀 먹었고? 넌 인마, 아프면 아프다고 연락을 하던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놀랐잖냐."
뭘 먹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젓고, 타박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눈을 감았더니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이불을 덮어준다. 연락이 되지 않은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용하다.
"죽이라도 먹을래?"
"..끓일 줄 알아요?"
눈을 떠 물어보자, 엄지손가락으로 그 옛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던 눈썹 위를 덧그린다. 예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날 뭘로 보고. 요리하면 미츠이 히사시 모르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으스대는 말에 피식 웃어버렸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서둘러 저지하는 말을 덧붙였다.
"안 먹을래요. 입맛이 없어서."
"그래."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곤 침실을 나간다. 부엌 쪽에서 바스락대는 소리, 수납장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상비약과 영양제 같은 것은 부엌의 가장 바깥쪽 싱크대 수납장에 넣어둔다. 조금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다시 생수를 들고 들어온다.
"약이라도 먹어."
생수병을 건네기에 몸을 일으켰다. 그가 손을 뻗어 일어나는 것을 돕는다. 중증 환자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하냐는 타박은 하지 않는다. 해열제 두 알을 손에 올려주고, 생수를 다시 가져가 뚜껑을 열어 준다. 곧 서른을 앞두더니 제법 배려를 아는 남자처럼 군다. 아니면 몇 년간 결혼생활을 하며 배웠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에겐 필요 없는 행동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금은 말하지 않는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다른 약을 꺼냈다. 종종 먹는 위장약이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위가 아플 수도 있으니 챙겨온 듯하다. 이 정도는 그전에도 있었던 그의 '의외로 섬세하고 다정한 면모'였다.
"거실에 있을 테니까 배고프거나, 아프면 말해."
"그냥 가도 돼요."
"1시간만 있다가 갈 거야."
아무 대답하지 않고 빤히 보았더니, 그는 손을 뻗어 마치 도자기라도 빚듯 볼을 만지고 엄지로 입술을 어루만진다. 아프지 마, 료타. 속삭이듯 말하며 손등으로 다시 볼을 쓸어내린다. 여전히 말없이 그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곧 아까처럼 나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 침실을 나가며 이번에는 조용히 문이 닫혔다. 그래, 사실 이런 배려와 다정은 아마도 타고난 그의 성정이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손끝을 이용해 지그시 누르고 둥글게 문질렀다. 거실에 당신이 있다면, 어차피 잠도 못 잘 텐데.
그와는 약 16년 전 처음 만나 제대로 관계를 쌓아 올린 것은 10년쯤 되었다. 단순 선후배 사이가 변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 미국에 가기 직전에 한 케케묵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고백 때문이었다.
좋아했었다는 고백에 그는 그러냐, 하고 웃을 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답을 바라고 한 고백이 아니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국 길에 올랐다. 환경과 언어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제법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온 그는 요즘 도통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불면의 원인이 나에게 있으니 책임지라는 소리를 했다. 어떻게 책임지면 되냐는 퉁명스러운 물음에 사귀는 것으로 갚으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고백을 해왔다.
그렇게 2년을 조금 넘게 만났다. 아니, 만났다고 해도 되나. 서로 바쁜 일정에, 미국과 일본이라는 먼 거리 탓에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다. 전화 통화는 엇갈리기 일쑤였고 편지는 매번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궁금할 무렵 잔뜩 구겨진 채로 나타나곤 했다. 방학이 되어 훈련을 하지 않는 기간에는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휴가 일정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과 사귄다는 느낌이 점점 없어졌다.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 다른 환경 탓에 만나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대화가 없으니 서로 무리해서 스킨십만 했다. 짐승처럼 쉼 없이 몸을 부딪치고 나면 공허함만 남았다.
헤어지자는 말에 그는 반대했다. 우리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잖냐고. 사랑한다는 말도 처음으로 들었다. 그렇지만 이 관계를 유지할 자신은, 사실 처음부터 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이렇게 떨어져서 제대로 만나지 못한 관계라 이 정도로 유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하는 만큼 당신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헤어진 후로도 여전히 일상을 살기에 바빴다. 다시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다시 만났다. 북산고 모임이었다. 의외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로를 대했고, 전처럼 다시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그다음 해 북산고 모임에 그는 청첩장을 들고 나타났다. 소개로 만난 사람과 1년 반 정도 연애하고 결혼을 한다고 했다.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 나를 힐끔 한 번 보고는 늘 그랬듯 너스레를 떨어댔다. 권준호 너는 축의금 두 배 내, 따위의.
그날인가, 누군가 그랬다. 그 사람은 귀한 집안의 삼대독자라 계속해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가업을 물려받지 않는 대신 하루라도 빨리 후계자를 낳으라는 말이 있었댔다. 결혼 상대자도 집안에서 정해둔 상대를 소개받은 거라고 했다. 예전에도 얼핏 듣기에 양조장인가 백화점인가 하는 집안의 아들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의 집안 배경 따위 관심이 없어 듣고 잊어버렸지만.
결혼하라는 압박은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날 향해 거짓이 없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태도에도 사실은 숨김이 있었던 걸까. 한참을 받아들이지 않던 이별을 받아들였던 이유가 그거였던 건가.
그날 새벽, 전화가 왔다. 잔뜩 취해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당신은 날 아직도 사랑한다고 했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발, 사정하던 그는 마지막에는 울며불며 소리쳤지만, 잘 들어가라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나는 당신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아무렇지 않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그 또한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1년에 한두 번은 만나 밥을 먹는다. 자주 보거나 연락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만나면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떠든다.
아주 가끔은 내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집을 찾아온다. 별수 없이 그에게 열쇠를 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혹시나, 하는 핑계로. 그는 별말 없이 열쇠를 받았다.
지난달에는 술에 취해 전화해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라 했다. 술만 마시면 이러는 거 곤란해요. 쉽게 할 수 있는 말인데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참 서로의 숨소리를 듣다가 전화가 끊겼다.
우리가 만일 헤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당신이 그런 집안의 삼대독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을 너무도 잘 알기에 우리의 연인 관계가 오래 가지 않았을 거란 것 또한 잘 안다.
솔직하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 수 없다.
연인으로서의 당신을 잃은 것은 언젠가의 상실과는 완전히 달라서, 오키나와의 비밀기지에 가서 펑펑 울 수도 없다. 당신을 털어내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나는 아직도 솔직해질 자신이 없다.
우리가 만일, 이라는 가정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모두 쓸모없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당신의 2세가 태어난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당신과 나에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끔은 다시는 만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집에 와 내 물건을 쉽게 찾고 익숙한 듯 나를 챙겨주곤 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라도 평생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겐.
누군가 귓가에 속삭인다.
료타, 이루어지지 않는 꿈 같은 건 꿀 필요도 없어.
비 온 뒤 땅은 굳고, 흐리면 반드시 맑은 하늘을 만난다.
어느 운이 좋은 날에는 꽤 선명한 무지개를 만날 때도 있다.
언젠가, 어느 무지개 너머에선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이름만 일본 이름이고 그냥 대만태섭인듯
농구 잘 모름
미츠료 대만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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