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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섭은 맹세코 정우성을 사랑할 생각이 없었다 4앱에서 작성
ㅇㅇ
24-03-05 15:02
송태섭은 맹세코 정우성을 사랑할 생각이 없었다 3
09 눈뜨고 코베이기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아침, 송태섭은 정우성의 차에 올라탔다. 정우성이 차에 열쇠를 꽂아넣고 시동을 거는 동안 안전벨트를 쭉 잡아당겼다. 정우성이 운전하는 차라니. 물론 송태섭도 한국에선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보통 운전면허를 따는 수능이 끝난 시점에 송태섭은 운전이고 뭐고 당장 한국을 뜰 준비를 해야했기에 어림도 없었다. 성인이지만 성인이지만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누리는 '갓 20살'의 자유를 만끽하지도 못 한 채 유일하게 누릴 수 있던 스무살 1월 1일 첫 술은 형 사진을 옆에 두고 한 잔 마신 뒤 얼굴을 잔뜩 구기며 잔을 밀어내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선 뭐, 술 존나게 마셨다. 인생의 쓴 맛을 알아버렸달까. 테이블에 엎어져도 보고 운동을 하니 담배는 입에 안 댔고, 한국과 달리 15살이 넘으면 운전을 할 수 있는 국가기에 운전에 익숙한 팀원의 차를 얻어탄 적은 많았지만 느끼기에 또래의 '외국인'이 운전하는 차였지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정우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니 새삼스럽게 자신이 성인임이 느껴졌다. 이래서 동향인, 동향인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국가에서 붕 뜬 기분이 사람 한 명 있다고 덜 든다니.
송태섭이 감상에 젖으려 할 틈도 주지 않고 정우성은 쉬지도 않고 말을 뱉어댔다. 태섭아미국에는열다섯살이되면아빠가자기가타던차를깨끗하게청소해서물려주는문화가있는거알아?근데꽝철이는한국에있으니까그냥꽝철이가준셈치고중고차뽑았잖아.
문화고 뭐고 그냥 중고차 산 사람이잖아 이 정우성아.
버스 타면 뺑뺑 돌아서 오래 걸리는 거 차를 타고 오니 금방 도착했다. 송태섭이 정신을 차리자 정우성은 "칫솔 안 버린다고 말했어!" 라며 대답도 듣지 않고 창문을 올렸고 송태섭의 손에는 정우성이 싼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머리도 올리지 못해서 앞머리를 위로 쓸어넘겨 캡모자로 눌렀다. 빡빡이집에 왁스가 있을리 없었다.
다시 어젯밤으로 돌아가서
정우성의 집은 원베드 아파트였다. 크진 않아도 있을건 다 있었다. 부엌 있고, 침실 구별 되어있고, 작지만 거실 모양새의 공간도 확보 되어 있으니 절로 이런 아파트 월세는 얼마나 하려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달에 2000달러는 넘겠지? 뭐 침대만 있으면 되지 이건 사치일지도. 그냥 부럽다고 말을 해 태섭아. 사실 너무 부러웠다. 송태섭은 기숙사가 슬슬 지긋지긋했다. 정우성은 엉거주춤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송태섭에게 피자 한 조각을 건넸고 송태섭은 질색했다. 채소 하나 안 들어간 정직한 페퍼로니 피자가 정말 미국다웠다.
"됐어 너나 먹어. 매일 피자냄새 맡고 있어봐 진짜 냄새만 맡아도 물린다니까."
정우성은 송태섭에게 쭉 뻗었던 피자를 그대로 입에 물곤 부엌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내왔다. 먹을거지? 송태섭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왜 괜찮지?
정우성이 여분의 칫솔을 찾는 사이 송태섭은 심각해졌다. 정우성 집이 마음에 든다. (결코 정우성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니다.) 침대와 책상만 두고도 꽉 찬 닭장같은 기숙사 방에 있다가 공간이 조금 넓어졌을 뿐인데 개운하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정우성은 송태섭에게 새칫솔을 건네며 양치컵도 같이 건넸다.
"뭐 하루 자는데 컵까지 새로 꺼내냐"
"어차피 자주 올 거 같은데 그냥 세면대에 놔둬"
"자주 오긴 뭘 와?"
"그런거 치곤 태섭아 너 지금 되게.."
정우성이 말을 아꼈다. 송태섭은 그제서야 자기가 정우성의 소파에 눕듯이 널부러져 리모컨을 꾹꾹 누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개쪽팔렸다.
송태섭은 아침에 정우성에게 칫솔은 그냥 버리라고 말했다.
"태섭아 그거 3.99달러짜리 칫솔이야. 나 칫솔에만 8달러 쓰긴 싫어"
정우성은 칫솔을 입에 물고 송태섭이 들고있는 노란색 칫솔을 집어다가 세면대 앞에서 던져넣듯 자신의 양치컵에 꽂아넣었다. 머지 않아 자신의 칫솔도 같은 컵에 꽂았다. 양치컵 하나에 노란색과 빨간색 칫솔이 x자를 그리고 있었다. 징그럽다.. 갖다 버려라.. 송태섭은 거듭 말했다.
아침을 만들어 주겠다던 정우성은 2인분은 처음이라더니 어 밥이 부족한가? 밥을 넣고 어 그럼 채소가 부족한가? 채소를 더 넣고 어 기름이 부족한가? 하고 기름을 넣고.. 그 짓을 반복하더니 깔거! 깔거!를 외쳤다.
"남은건 뭐, 덮고 자게?"
송태섭은 거대한 밥을 보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맛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송태섭은 이 많은 볶음밥을 처리하는데 돕기로 했다. 점심값도 아끼고 좋긴 한데..
유리용기, 씻어서 돌려달라는 거겠지?
어쩐지 뭔가 당한 기분이었다.
10 경계의 적은 무뎌짐
다시 말하지만 송태섭은 정우성이 편해졌다거나, 친구로 여긴다거나, 마음에 든다는건 절대 아니다.
다만 정우성의 집이 송태섭의 마음에 들었고, 기숙사 룸메이트가 송태섭이 종종 방을 비운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인을 불러와 이곳저곳에서(송태섭의 침대도 예외는 아니었다.)떡을 쳐댄걸 알고 개씨발거리며 바닥청소와 이불빨래를 했으며, 한 번 정우성의 집에 눌러 붙어보니 온갖 또라이들은 다 모이는 미국 그것도 서부의 버스를 타고 개고생 귀갓길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버렸단 거다. 미국은 생각보다 더 치안을 좆박아놓은 국가였고 송태섭은 차 한 대 리스할 돈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어지간히 달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우성도 슬슬 배달주문을 줄여가는데 송태섭의 방문 빈도수는 비슷했다.
송태섭도 송태섭의 문제지만 정우성도 시도때도 없이 개수작을 부렸다.
송태섭이 늦게라도 기숙사에 돌아가겠다 정 신경쓰이면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면 멀쩡히 파킹랏에 잘 주차되어있는 차를 수리 맡겼다 둘러댔다. 태섭아 버스 끊겼을걸... 그럼 또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다. 양치컵에 꽂힌 칫솔은 물기가 마를 새도 없었다. 훈련을 마치고 땀에 젖은 유니폼을 가방에 쑤셔넣으며 기숙사 세탁기에 쓸 동전도 떨어졌는데 정우성 집에서 빨까? 정우성 유니폼에 노란색 물들면 웃기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송태섭은 깨달았다. 뭐지? 언제부터? 송태섭은 맹세코 정우성과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우성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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