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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3 할신타브 구속 2앱에서 작성
ㅇㅇ
24-02-25 17:53
결혼을 하고 난 뒤로도 한동안은 헤맸다. 타브는 할신을 가졌지만, 그는 할신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할신이 마음을 나눌 존재를 만나게 되면 타브는 꼼짝없이 그자와 할신을 공유해야 했다. 어쩌면 할신이 돌보고 있는 이 아이들 중 하나가 자라서 할신과 좀더 친밀한 사이가 될지도 몰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타브는 할신에게 한마디 불평하지도 못한 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타브는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미쳤는지도 모르지. 타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었다 살아나는 것처럼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반지를 손으로 쓸었다. 그래도 나는 할신을 가졌어. 아주 잠깐이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타브가 숨을 돌릴 때마다 사악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타브는 거세게 도리질치며 그 목소리를 떨쳐내려 했다.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든 억눌렀다. 할신이 알면 안 돼. 알게 되면 그가 싫어할거야. 그가 나를 소유하고 싶은 건 그저... 우리의 관계에 조금 더 단단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는 나를 사랑해.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래, 그러면 된 거야. 그거면 다 된 거야.
걱정은 빠르게 현실이 됐다. 숲속 작은 마을에는 종종 방랑자들이 오갔고, 그 중 일부는 이곳에 터를 잡고 정착하기도 했다. 낯선 얼굴 중 하나는 할신과 대화를 자주 나눴다. 그자는 엘프였고 잘 웃었다. 이야기를 듣는 할신도 다정하게 웃었다.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그의 푸근함이 원망스러워 타브는 부러 그들이 함께 있을 때마다 몸을 피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굴어야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둘이서 언제부터 그렇게 친해졌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둘만이 공유하는 추억이 있는지, 타브는 하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도 타브는 진정하기 위해 애썼다. 잠자리에서 저를 품에 안은 할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심장이 뛰는 것을 세었다. 평온하다. 이 평화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타브는 몸을 잔뜩 옹송그렸다. 한참 작은 그의 몸뚱이를 할신의 테두리 안에 욱여넣으려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엘프는 성격 좋은 얼굴로 웃었다. 할신도 없는데 여기까진 어쩐 일이신가요. 차가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초면이나 다름없는 자인데 말을 너무 함부로 한 것 같아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있자니 그자가 한걸음 더 다가왔다. 할신이 제게 당신을 맡기고 가서요.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에서 흘러나온 말에 타브는 그만 굳어버렸다. 아 참, 할신이 당신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했어요. 괜찮죠? 이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그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드엘프에게는 너무도 흔하고 일상적인 일이기에 질문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에 타브는 맥이 탁 풀렸다. 이상하지,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마다 죽고 싶었는데 실제로 닥쳐오니까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타브가 고개를 돌려 그자를 마주했다.
...그래요.
타브가 천천히 옷을 벗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나신이 드러났다. 아직 하의를 다 벗지도 않았는데 그자가 다가와 타브의 목덜미에 지분거렸다. 드러난 맨살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제서야 물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할신이 오고 나서 할게요. 타브는 다시 옷을 주워입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자의 억센 손이 타브의 팔뚝을 억세게 그러쥐었다. 왜, 당신도 동의했잖아. 귓가에 닿는 뜨겁고 기분 나쁜 숨결에 타브가 악을 쓰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상해. 할신이 있었다면 적어도 셋이 하자고 했을 텐데. 왜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든 거지? 타브는 자신의 안일함을 탓하며 발버둥쳤지만 그럴수록 그자의 손아귀 안으로 옮아매졌을 뿐이었다. 바지가 찢기듯 벗겨졌다. 타브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그 때였다.
퍼억!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그자가 떨어져나갔다. 할신의 주먹에 피가 묻어났다. 엘프는 줄행랑쳤고, 타브는 덜덜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저자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소? 할신이 타브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무척이나 놀란 얼굴, 걱정이 가득한 눈동자. 아, 멍청한 건 나 혼자였구나. 타브는 멍하니 할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날 이후 타브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할신의 치유력으로 외상은 씻은 듯이 사라졌으나, 타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만 잤다. 가끔씩 눈을 떴을 때도 곧 다시 감아버렸다. 할신이 뭐라도 먹이려고 했지만 조금도 받아내지 못했고 물로 입술만 축이고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타브는 추운 듯이 이불을 몸에 꽁꽁 두르고 있었기에 할신은 타브를 이불째로 끌어안았다. 그러나 타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몸을 가려야 한다는 무의식만이 그를 지배했다. 타브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다시 잠에 들었다. 집안이 너무도 조용했다.
여보, 당신. 할신이 타브를 흔들어 깨웠다. 간신히 눈을 뜬 타브는 어지러워서 작게 앓았다. 할신이 타브의 고개를 받쳐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겠소. 당신이 원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소. 그래도 제발... 일어나주면 안 되겠소? 내게 화를 내고 나를 비난해도 좋소. 그저 일어나주시오. 무엇보다 살아있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소... 타브는 제 뺨을 감싼 할신의 손을 느꼈다. 움푹 패여버린 볼을 조심스럽게 감싼 손가락 끝이 타브의 입술 언저리에 와 닿았다.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겠지. 살아있는 거라... 타브의 고개가 할신의 손 안쪽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 앞에서, 목숨이 경각에 치달은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몇 번이나 살아남았다. 그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죽을 뻔했던 것도 아닌데. 탄식같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있잖아, 할신.
타브는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내가 그자를 당신의 애인으로 착각해서, 그자가 나한테 자자고 하는 걸 받아들였어. 한 문장이면 되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괴로워한 것이 무색하게도 아주 짧고 간결한 말이었다. 입밖으로 내뱉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하찮은 일로 당신을 슬프게 하다니. 다음엔 그러지 않을게. 타브가 창피해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 힘은 없는데 눈물은 용케도 흘러나왔다. 할신이 손을 들어 타브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다음 같은 건 절대로 없을 것이오. 잔뜩 억누른 목소리에 타브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떨며 웃었다. 하지만 당신, '절대'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인 나도 잘 아는데,
하물며 몇백년을 사는 당신이라면.
발더스3 할신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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