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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밥 카블루의 악몽앱에서 작성
ㅇㅇ
24-02-26 23:48
개연성 없음
뭔가 이상하다... 분명 동료들과 미궁을 탐험하고 있었는데. 카블루는 언젠가부터 주변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걸 느낌. 동료들을 한 명씩 불러보며 주의를 기울여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음. 저만치 너머에서 일렁이는 빛을 발견했음. 일단 따라가 보니 낯선 건지 아니면 익숙한 건지 평범하지만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문이 나타남. 너머에서 인기척은 없었음. 인지가 어려운 이곳에서 헤매기보다는 잠시라도 쉬는 게 낫겠지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감. 쏟아지는 새하얀 빛 때문에 잠시 눈앞이 가려지고 다시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따듯한 오후의 가정집임. 방금까지 미궁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상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있지? 던전에 걸려있는 마법이거나 환상일 거라는 예상이 카블루의 머리를 스쳤음.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말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집안이었음. 창가에 드리우는 노을의 햇살만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뒷받침해 주는 듯했음.
- 왔어 카블루?
분명 자신 외에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옴. 목소리의 주인공은 뜬금없게도 라이오스였음. 가볍고 편한 차림새를 하고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지. 라이오스?! 어서 와, 배고프지? 라이오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방 안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음. 몇 시간을 꼬박 계속 걸어 다녔으니 당연히 배가 고팠지. 뱃속이 타이밍 좋게 꼬르륵거리는 바람에 라이오스는 웃어 보였고 카블루는 멋쩍게 따라 웃었음. 지금 앞에 있는 건 마물 같은 건가? 제가 아는 라이오스와 똑같이 생겼는데, 사람을 흉내 내는 마물이 뭐뭐 있었더라... 카블루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자기가 아는 마물 지식 총집합해서 열심히 추론해 보지만 솔직히 답을 내리기 어려웠음. 같이 밥 먹을까? 그런 카블루를 자연스레 이끌고 라이오스는 식당으로 향했음. 밥이요? 그거 마물 얘기하는 건가요? 다른 사람도 아닌 라이오스가 먹는 얘기를 한다면 부정하고 싶어도 마물식일게 뻔한 일이었음. 카블루 경계심 확 올라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카블루,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하면서 식탁에 차린 거 보여줌. 위에 놓인 것들은 정말 보통의 음식들임. 뭘까 하면서 의자에 앉아 차례대로 살펴보니 하나하나 다 맛있어 보이고 냄새도 식욕을 자극함. 건너편에 앉은 라이오스 벌써 아무렇지 않게 음식 떠먹고 있음. 카블루 여전히 미심쩍은 의심을 풀지 않고 아주 살짝만 먹어보는데 맛도 좋음. 맛있다...? 그치! 다행이다~
- 근데 뭐예요, 왜 라이오스가 갑자기 저에게 밥을...
- 응? 오늘은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 푸헙! 결혼? 우리 가요?
- 너 오늘따라 왜 그래? 설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고 있었어?
라이오스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둘째치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고...! 그러니까 카블루가 정말 결혼한 적이 있다면 죽어도 그걸 잊어버릴리 없겠지.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라이오스와의 결혼이라니. 애초에 죽었다 깨어나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이야. 우리가 결혼을...? 하고 반사작용처럼 손을 쳐다보니 라이오스도 본인도 약지에 똑같이 생긴 반지를 끼고 있음. 완벽하게 자신의 취향이 담겨 세공된 은색 고리가 반짝거렸지.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몰아치고 있음. 사실 카블루는 라이오스를 알고 난 다음부터. 또 직접 대화를 하고 난 후로 그를 향한 자신의 복잡한 감정이 무엇일까 하고 내심 수도 없이 고민한 적이 있었음. 그런데 이런 건, 이런 식으로는...
- 카블루,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 아 에? 네, 네 저도 고마워요... 근데 얼마나 됐죠 저희...?
- 음? 3년이잖아!
- 그랬죠, 그럼 또...
- 자.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아~
앗 제가 알아서... 카블루 일단 눈치껏 상황 파악하고 정보를 찾아내려 노력하는데 라이오스가 직접 음식 들이미는 바람에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받아먹음. 3년이라고? 섬에 온건 2년 전이니 과거는 아니고, 그럼 미래의 시점... (우물우물) 우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입맛에 딱 맞아서 놀라워하니까 라이오스도 즐거워함. 응응 많이 먹어 카블루. 일단 밥 먹으면서 계속 관찰을 이어감. 집안 곳곳 두 사람의 생활감이 느껴지는 게 보임. 자신이 쓸법한, 실제 쓰고 있는 물건들과 라이오스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 심지어 마물의 표본 같은 것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 보면 볼수록 마치 진짜 같아 보였음. 평화롭고 뭐랄까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음. 하하. 라이오스가 조용히 웃어 보임. 응? 왜요? 카블루 입에 다 묻었어. 아... 머쓱하게 카블루 손등 들어 올리는데 기다려봐 닦을 거 가져다줄게. 하면서 라이오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수건을 가져옴. 내가 닦아줄게. 옆에 다가와서는 손수 닦아주는데 라이오스 매우 자연스럽게 카블루 허벅지에 손 올림. 먼저 다가오는 걸로 모자라 적극적인 터치라니, 카블루가 라이오스 빤히 바라보니까 노린 게 맞았구나 싶을 정도로 진한 눈 맞춤이 이어짐. 그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음. 저기 라이오스... 응...? 우리는... 카블루 뭐에 홀린 것처럼 덩달아 라이오스에게 손대려는 순간. 건넌방에서 어린 울음소리가 들려옴.
- 앗. 아기 잠에서 깼나 보다!
- 아기? 무슨 아기... 서서설마, 우리 아기예요?
잠깐만 금방 보고 올게! 문을 나서는 라이오스의 뒷모습을 보고 카블루 진짜 진심으로 어이가 가출함. 결혼을 넘어 아이까지 있다고? 이 정도까지 오니 카블루 슬슬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두려워짐. 카블루, 이것 봐 아기가 아빠 온 줄 알고 인사하고 싶었나 봐. 포근해 보이는 천 안에 싸인 작은 형상을 품 안에 든 모습의 라이오스가 금방 돌아옴. 라이오스의 너른 품 사이에서 살짝 드러난 검은 곱슬머리가 보임. 카블루 그걸 보자마자 순간 마음이 이상해짐. 말로 표현이 안되는 간질간질한 기분이 피어 오름. 예측이 전혀 통하지 않는 지금,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나면서도 왜 때문인지 괜히 가슴이 두근거림. 자 아빠한테 인사하자~ 라이오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살짝 몸을 굽혀 아이를 보여줌. 카블루 묘한 기대감을 품고 조심히 살펴보는데, 천 안에는 검은 곱슬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하피가 들어있음. 응??? 눈 다시 감았다 떠보지만 작은 날개를 퍼덕이면서 씨익 웃어 보이는 하피의 얼굴만 보임.
- 으아아아악!!!
- 세상에 웃는 것 좀 봐. 아빠를 봐서 좋은가 봐~
라이오스는 뭐가 좋다고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카블루 놀라서 뒷걸음치는데 발끝에 식탁이 채임.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고 시선을 돌려보니 아까까지 먹고 있던 식탁에 음식들 단면 사이사이로 마물의 것으로 보이는 조각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게 눈에 들어옴. 우욱...! 카블루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자 카블루 빨리 밥 먹자! 아니면 우리 아이 안아볼래? 헤실헤실 웃으며 마물식이랑 하피 마물 아기 들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라이오스 보고 뒤로 확 넘어지며 소리 지르다가 번뜩 잠에서 깸.
- 헉... 헉...
- 으으음... 카블루...?
- 악몽... 악.. 아니, 이건 지옥...!!
무슨 소리야...? 카블루가 누워 있는 벽 반대쪽에서 방금 잠에서 깬 라이오스가 눈가를 비비며 하품 하고 있음. 손가락은 반짝 거리는 것 없이 매끈하고 깨끗하게 비어있는 상태였음. 카블루 그거 보자마자 드디어 현실이구나 하며 깊은 안도감에 깊은 한숨 내쉬었을 듯. 그리고 며칠 전 미궁의 지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동료들과 찢어지고 라이오스랑 붙어버려서 임시방편으로 같이 움직이게 됐었던 기억이 차츰 떠오름. 이대로 계속 길을 찾지 못하면 너랑 단둘이 미궁에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거나 카블루가 가지고 있는 개인 식량이 떨어지면 같이 마물 먹을 거지? (기대심 만땅의 얼굴을) 하고 물어오던 라이오스도 다시 기억났지... 정말 지독한 악몽을 꿔버린 카블루였음. 소리 지르며 깨질 않나, 땀 삐질삐질 흘리는 모양새에 눈 밑도 퀭하니 라이오스 혹시? 하는 표정으로 카블루 베개 건드려 볼 듯.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가까워지는 라이오스를 살짝 피하며 물어보자 곧바로 베개에서 덜그럭 소리와 함께 뭐가 후두둑 떨어져 나옴.
- 역시 나이트메어구나! 여기서도 나오네? 카블루, 나 이거 가져도..
- 싫어요!
지긋지긋한 이놈의 마물...! 팍 하고 뺏어서 그대로 던져버리려는 거 라이오스가 겨우 매달려 말림. 그러지 마 이거 먹으면 맛있단 말이야...ㅠ 카블루 악몽이 얼마나 꺼림직했는지 구구절절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절대로 말 안 했을 듯) 하소연해서 결국 먹지는 않았음. 그래도 라이오스 아쉬워서 한동안 쩝쩝거릴 듯. 나중에 카블루가 몰래 나이트메어 태우든 부수든 담가버리든 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없애 버렸겠지. 자신이 꿨던 악몽도 부디 없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나이트메어가 죽으면서 나오는 연기로 선명하게 재방송해버리고 만... 천만다행인 건 라이오스나 동료들이 곁에 없어서 혼자만의 악몽으로 묻어 넘길 수 있었을 듯.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이 라이오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답이 없는 미지의 상태로 남아있어서 계속 카블루를 괴롭힐 것 같음.
이게 카블라이가 맞나? 카블루가 라이오스 때문에 고통받으니까 맞는 듯. 아무튼 카블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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