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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ㅌㅁㅇ 친구네 아빠 좋아하는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앱에서 작성
ㅇㅇ
24-02-25 21:53
좀 이상하게 들리는 건 알고 있음
미리 밝히자면 나는 성인이고 상대방도 혼자 지내신지 오래된 분임. 아내분은 친구가 아기였을 때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음...난 솔직히 윤리적으로 그렇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서.....
그분이랑 알게 된 건 몇년 됐음. 하이스쿨에서 만난 친구고 내가 유학생이고 존나 보수적인 지역이었어서 사실 걔 말고는 친구 없었음. K라고 할게. 아무튼 K도 이민 온 처지라 그랬을 거임. 물론 난 존나 평범한 동양인이고 걘 존나 완벽한 외모의 유럽인이라 처지는 달랐지만..
아무튼 걔는 자기 아빠가 주변 지역 대학 교수로 초빙받아서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거라 그랬었는데 맨날 아빠 욕을 했었단 말임. 얼마나 엄한지 얼마나 깐깐한지.....그래서 두꺼운 안경에 배 불룩 튀어나온 잔소리쟁이 중년 아저씨로 상상했었지. 교수에 홀아비면 다들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을거 아니야? K네 집에 숙제하러 자주 갔었는데 일년 넘게 마주친 적도 없었음. 근데 어느 날 걔네 집에 노트랑 이것저것 가져가러 들렸었단 말임? 하도 자주 들락거려서 K가 나한테 열쇠 위치도 알려줬거든. 아무튼 자연스럽게 K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서재 쪽에서 처음 보는 남자랑 딱 마주친거임.
".....누구?"
약간 눈가 살짝 찌푸리면서 그렇게 묻는데 그냥.. 너무 멋있었음. 키도 엄청 크고, 목소리도 엄청 낮고....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던 것 같음. 억양이 특이했는데 그분도 외국어를 쓰는 거니까 그랬겠지. 아무튼 그것마저도 섹시했음. 멍청하게 서서 어버버 말도 못하고 멍하니 고개 꺾어서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그분이 서서히 굳어있던 입가 풀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임.
"K 친구니?"
".....네,.."
"겁먹게 해서 미안하구나."
남의 집에 막 들어온 건 난데..겁먹은 것도 아닌데 그렇데 말하는 목소리가 나른해서 가슴이 막 뛰었음. 미쳤다 욕해도 할 말 없지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임. 친구 아빠 보면서 침이나 질질 흘리는데 미친년 맞지 뭐..
그 이후론 K네 집 갈때마다 맨날 신경이 바짝 곤두서더라. 데이트할 때도 안 입던 치마에 구두에 지금 생각해보면 쪽팔리게 별 지랄을 다 했음. 가끔 주말에 가면 서재에서 책 읽는 옆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였거든.
그럼 괜히 문 앞에서 물컵 들고 왔다갔다하고, 시키지도 않은 커피 가져다 주면서 끼부리고....치마 입고 탁자에 앉아 다리 꼬면서 눈웃음 흘리고 인터넷에서 본거 다 따라해봤을 거임. 그래봤자 존나 갓잖고 웃기기만 했겠지만. 존나 너드티 줄줄 흐르는 애가 끼부려봤자 뻔하지. 유혹이 먹힐까봐 했다기보단 종종 마주치는 차분한 시선이라던가, 말려 올라간 치맛자락을 손등으로 내려주는 기다란 손가락이나, "날이 찬데." 덤덤한 걱정 담긴 핀잔 같은 것들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음.
그래서 엄청난 진전이 있었건 아님. 나 혼자 그렇게 좋아했을 뿐임. 죽도록 공부해서 아저씨가 계신 그 대학에 합격했고 여전히 온갖 핑계를 들어 집에 드나들었지만 그뿐이었음. K는 타도시로 떠나서 핑계를 대기도 민망했지만.....그냥 여기가 마음이 편해서요. 이런 말이나 했는데 믿으시는 것 같더라. 네가 편하다면 언제든 오래. 그 한마디에 내 심장이 위아래로 덜컹거리는 것도 모르고. 조용히 내 옆으로 찻잔을 밀어주고 서재로 돌아가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속이 탔음.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눈치채기 싫은 걸까. 그냥 어린애니까? 아저씨 눈엔 내가 그저 딸아이 정도인 걸까 싶은 생각도 들고.
이제 내가 저 사람을 얼마나 오래 좋아한 건지도 손가락을 세지 않고서는 계산이 되지 않아. 안개처럼 번진 아저씨의 회색 머리칼을 볼 때만 실감이 나. 물론 여전히 아름다우시지. 난 여전히 바보같고. 이제 곧 졸업이고, 그 사이에 연애도 몇 번 했는데 자꾸 미련이 남음. 고백이라도 제대로 해볼까 싶다가도 다신 얼굴도 못 보게 될까봐 무서워. 근데 또 어쩌면 그분도 이젠 날 여자로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자꾸 들어서.. 며칠 전에는 그분 집에 저녁을 먹으러 들렸는데 그분이 와인을 따라줬거든. 내가 잠깐 멈칫하니까 마른 손으로 눈가를 쓸더니 그렇게 말하더라.
너도 다 크지 않았니? 하고...........
내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거겠지. 근데 그 말을 하는 그의 눈동자가 순간 뭔가 달랐던 것 같았음. 평소처럼 아들의 친구, 딸같은 아이를 보는 눈이 아니라.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좀 달랐어. 그렇게 보고싶은 내 착각인 걸까.
그래서 진짜 수년만에, 오랜만에 K를 만나서 내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볼까 했거든. 누구한테라도 털어놔야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근데 진짜 조심스럽게 K,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너도 아는 사람이야. 그렇게 운을 뗐는데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 애 눈이 싸늘하게 굳더라. 다른 사람이 아닌 나한테 그렇게 차가운 적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파란 눈이 채도 없이 가라앉아선 그러더라. 내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자기한테 이런 얘기를 하냐고. 아버지랑 떡치고 싶다고? 허니, 차라리 나한테 하자고 해.
"나랑 닮았잖아. 아니야?"
정신 차려.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머리가 차게 식더라. 나를 뭘로 보길래 그러지? 싶고. K한테는 내가 그냥 본인을 좋아해서 졸졸 쫓아다니는 비슷비슷한 여자애 중 하나였던 걸까 싶더라. 아니면 자기 아버지를 유혹해 원조교제나 시도하려는 싸구려 계집애로 보였나? 교정이라도 해주겠다는 건지 신경질적으로 턱을 잡아 키스하는데 너무 화가 나니까 몸도 잘 안 움직이더라. 혀가 들어온 후에야 화들짝 놀라서 밀쳐냈어. 어떻게 벗어났는지도 기억이 안 나.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방문을 열고 나오니까 문 앞에 있던 아저씨가 놀란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라. 손수건을 꺼내서 뺨을 쓸어 주는데 어깨가 덜덜덜 떨렸음. 데려다 주마. 고개만 끄덕이면서 얼굴 벅벅 닦은 후에 울음 삼기고 차까지 따라갔음. 너무 머리가 복잡해서 아저씨가 벨트 채워주는데 두근거릴 정신도 없더라.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창가에 이마 박은 채 몇십분을 가는데, 내 손에 쥐어진 손수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더라. 그냥 새어나왔단 표현이 정확한가.
"Ti desidero.(당신을 원해요.)"
그 사람의 모국어. 서툴기 짝이 없는 발음으로 속삭이듯 웅얼거리곤 고개를 푹 숙였음. 아마 알아듣지도 못했겠지. 퉁퉁 부은 눈을 몇번이나 깜박였을까. 적막이 깨졌음.
"Non posso fidarmi di te."
아가. 내 집에서 내 아들과 뭘 했지. 나직한 음성으로 말해.
아주 차분하지만 서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묻힌 채로.
내가 어디서부터 그렇게 잘못한 걸까....? 친구도 당사자도 저렇게 화나게 할 만큼? 난 이제 진짜 어떡해야 해?
킴로시너붕붕 영킴로시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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