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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십년도 더 지난 중장의 하얀거짓말이 탄로가 난다면.앱에서 작성
ㅇㅇ
23-12-02 04:13
ㅇㅌㅈㅇ ㄴㅈㅈㅇ
5.
사이클론은 한달에 한번꼴로 교외의 창고형마트에서 장을 보고는 했음. 기름을 가득 채우고, 카트를 한가득 채우고, 마무리로 핫도그몇개로 위장을 채우는걸 그는 나름 즐겼을거다. 그게 그의 휴일의 루틴임. 오늘도 중장은 장을 보았음. 일단 다 떨어진 세제를 담고, 살까 고민했던 탄산수제조기가 세일을 하길래 그것도 카드에 담았음. 그리고 식료품코너를 둘러보았음. 야식으로 먹을 냉동식품 몇개와 맥주, 디너롤같은것도 카트에 들어갔을거다. 한번에 여러개씩 먹는 계란도 담았고.
중장은 과자코너를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살폈음. 사실 그는 혼자서 스낵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허니와 같이 먹을 간식들을 사는걸 어느샌가부터 즐기게되었으면 좋겠다. 어릴때부터 허니의 단것입맛은 그가 만들어준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허니에게 먹여야지, 라는게 고등학생의 보심슨에게 박혔었고 그것은 지금도 은은하게 이어지고 있었음. 그때는 용돈으로 고심해서 한두개 사던것이 지금은 그냥 이것저것 아무거나 사도 별 타격없는 재력의 어른이 되었다는것만 바뀌었을 뿐.
사이클론은 새로운맛의 오레오와 감자칩을 골랐음. 그리고 설탕을 줄였다던 초코바를 살피다가 그건 결국 사지 않았을듯. 대신에 피넛버터쿠키를 카트에 담았음. 그건 언제나 허니의 올타임넘버원이었으니까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이걸 준다면 쫄따구는 얼마나 좋아할까. 계산을 하고 물건을 차에 실은 사이클론이 실실거렸음. 언제나 고맙다고 말도 하기전에 일단 입에 집어넣고 웃어대는 그 얼굴이란. 그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휴대전화를 꺼냈음. 음, 월요일까지는 못기다릴것같아. 그 멍청하게 웃는 얼굴이 보고싶어.
-쫄따구. 자?
[아닙니다. 크, 크흠. 누워있었습니다.]
-나 지금 마트에 왔는데 뭔갈 많이 샀거든. 너에게 나누어주려고 하는데 지금부터 네 집에 가도 괜찮아?
[안된다고 해도 오실거잖아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몇분걸려요?]
-한 삼십분? 일부러 나때문에 청소할필요는 없어.
[청소하려는게 아니라 좀 씻으려고 하는겁니다. 그럼 이따 뵐게요.]
-오냐.
이미 허니가 사는 집주소는 예전에 이사를 도와주느라 알고있는 사이클론이 차에 올랐음. 그는 허니의 주차장에 자신의 차를 대고 담배를 피며 한 십분은 더 기다렸음. 딱 삼십분에 맞추어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안녕.
-주말에 상사보는거 좀 별로다… 그렇죠?
-저번에는 파란날 내가 오는걸 기다리고 어쩌고 하더니.
-그건 어릴때였죠. 들어오세요. 마실거 드려요?
-아니, 여기 내가 가져왔어. 자몽주스할인하더라.
-아 감사합니다.
사이클론과 허니는 그녀의 작은 플랫에서 자몽주스를 마셨음. 허니는 과연 씻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지 머리카락끝이 조금 젖어있었지. 허니가 사이클론이 대량으로 사서 반씩가져온 장바구니를 살피며 좋아했음.
-오, 이 브랜드쿠키 좋아합니다. 엄청 고소하잖아요.
-알아.
-감사합니다.
이미 쿠키를 으적거리며 허니가 아저씨에게 감사인사를 했음. 사이클론은 그냥 미소지으며 끄덕였지. 부스러기떨어지면 그거나 물티슈로 닦아주고.
-마트에선 어떠셨습니까?
-뭐가?
-여성분들있었냐구요.
-아… 그거. 그런데 거기는 대량으로 파는데라서 혼자사는 사람은 잘 안가지 보통.
-그런가… 하지만 싱글맘이나 뭐 그런분들도 있을거 아닙니까.
-싱글맘?
-생각해보세요. 싱글맘을 공략하면 아주 쉬워지는거 아닙니까? 이미 아이가 있으니까 바로 입양하면 되는거잖아요. 그럼 임신하고 출산까지 기다릴필요가 없으니까.
-흠, 그런생각은 못했네.
-중장님 어차피 애들이랑 잘놀아주시잖아요.
-내가 애들이랑 잘 놀아주는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제가 그 애였으니까요!
허니가 키득거리며 웃었음.
-나는 너말고 다른 꼬맹이랑 십분이상 이야기해본적도 없어 쫄따구야.
-그렇습니까? 전 원래 아저씨가 애들좋아하는줄 알았습니다.
-그건 아니야. 뭐 나도 남들만큼은 애들 귀엽다고는 생각하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동료들 자식들이 나를 무서워하더라고.
-왜요?
-내 얼굴이 무서운가봐.
-걔네 참 보는 눈 없다. 그쵸?
-니가 특이한거라고는 생각안해?
-아닌데. 나는 안특이한데.
허니가 피식거리며 어릴때 하던것처럼 사이클론의 턱수염을 손가락으로 꾹꾹눌렀음. 그는 어이없다는듯 웃었음. 세살인 허니비가 면도안된 보심슨의 턱에다 곧잘 하던 행동. 아저씨는 왜 여기 털이 났어? 왜 어젯밤에는 없었는데 아침에 생겼어? 턱에 물 줘서 수염이 자란거야? 왜 따가워? 왜 나는 수염없어? 애들은 수염안나? 왜 나는 애들이야? 왜 아저씨는 아저씨야? 왜 아저씨는 키가 커? 왜 아저씨는 내가 턱만지면 웃어? 왜 아저씨는 나만보면 웃어요? 왜? 왜? 왜? 아 왜 나 들어올려요? 내 배에 방구 불어넣지마! 이런것들.
이제는 저 왜라는 질문들도, 허니를 들어올려서 한바퀴 빙글도는 행동들도 할수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십몇년전의 유대를 가지고 있음. 사이클론은 허니가 턱을 누르며 그를 놀리는걸 내버려두었음.
-와… 이제 턱수염도 하얀게 생기는군요.
-어쩔수없지 뭐.
-아직은 몇가닥 없지만 더 많아지기 전에 얼른 결혼하셔야겠네요.
-윙맨이 포기해서 그것도 힘들겠네.
-그렇네요. 그럼 어떡해요. 그냥 혼자 늙어야지.
-어휴.
=
물건만 전해주고 집으로 가려던게 조금 늘어진 토요일 오후, 사이클론과 허니는 허니의 태블릿으로 예능프로그램을 보았음. 허니가 화면에 집중하며 소파구석에서 낡은 담요를 껴안는게 그의 눈에 들어왔음.
-쫄따구 너 그거 아직도 가지고 있어?
-이 담요요? 네. 저 이거 없으면 잠 못자요. 아시잖아요.
-그냥 그거 버리면 안돼? 다 낡아서 이미 몇군데는 구멍났네.
-안됩니다. 이걸 어떻게 버립니까. 아시잖아요. 엄마가 유일하게 남긴건데요.
허니가 어릴때부터 애지중지하던 담요를 보고 사이클론이 복잡하다는 의미의 한숨을 쉬었음. 쟤는 저걸 아직도 엄마가 두고간 물건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예전에는 그냥 내버려뒀지만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저걸 끼고 있을줄을 몰랐거든요.
사이클론이 어딘가 애매하게 찝찝한 표정을 짓자 허니가 그를 바라보았음.
-왜요?
-아니, 뭐 별건 아니고.
-담요가 왜요? 뭐가 별거 아닌데요?
-아냐 됐어…
일부러 화제를 피하려는 중장의 태도에 의심이 더해진 허니가 캐물었음. 허니는 탭을 꺼버리고 중장의 얼굴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음.
-아저씨 지금 뭔가 나한테 숨기는거죠?
-그래 그건 맞는데… 내가 이야기해봤자 네 기분만 안좋아질거고.
-뭔데요. 화 안낼테니까 말해주세요.
중장이 뒷머리를 벅벅긁었음. 사실을 감추는건 그럭저럭 할수는 있어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졌음.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음.
-사실 그거 네 어머니가 두고 가신거 아니야…
-네? 아닌데. 이거 저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거 맞아요.
-그래. 그거 너 어릴때부터 가진거 맞는데… 내가…
-아저씨가 뭐요?
-내가 산거야 그거.
-무슨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네 어머니가 너 백일되기 전에 사라지… 아니 어딘가로 가시고 너 엄마란 존재가 뭔지도 모르고 자랐잖아. 그런데 말을 시작하고 뭔가 알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니까… 너도 엄마를 찾았어.
허니가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음. 허니비의 어린시절은 허니자신보다 보심슨이 훨씬 더 많은걸 기억하고 알고있으니까. 중장이 말을 이어갔음.
-네가 세살되기 전부터 너는 부쩍 엄마는 어딨냐고 찾기 시작했고, 떼를 많이 쓰고 울었어.
-...
-그런데 어린애에게 네 엄마가 돌아오지않을거라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것도 웃기잖아.
-그래서요?
-그래서 내가 저 담요를 사다가 너에게 주면서 그런거야. 이게 네 엄마가 두고간거라고, 엄마냄새가 날테니까 이걸 덮고 자면 잠이 잘 올거라고.
-...
-그러니까 네가 뭔가 네 작은마음이 그걸 납득했는지 어쨌는지… 그때부터 넌 저 담요를 안고 잠투정하는게 줄었어. 그래서 그냥 계속 그게 네 엄마가 두고간 물건이라고…
-하지만… 제 기억에 언제나 저 담요는 포근한 냄새가 났어요…
-아… 그건 허니야… 그건 내가, 음… 가끔 그 담요에 비누향이 나는 향수를 뿌려서 그런거야.
허니가 복잡미묘한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봤음. 허니가 입술을 씹기 시작하자 보심슨은 그걸 조금 괴로운표정으로 바라보았음.
-내 딴에는 어린 네가 우는것보다는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서 널 안심시키고 싶어서 그랬어.
-네…
-사실 그게 오래갈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허니가 담요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음. 허니의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을거임.
-나는 나 혼자 힘들때 이 담요를 안고 버텼는데…
-미안…
-언젠가부터 포근한냄새가 나질 않았어도… 깊게 들이쉬면 날것같아서 얼굴을 묻고 잔적도 많았는데…
-허니…
-이 담요만이 엄마가 나를… 아예 끊어버리지 않은 증거라고… 한 조각의 미련없이 그렇게 떠날사람이었으면 담요를 놓고가지 않았을거라고… 언젠가 나를 데리러 올거라고…
-Shh… 울지마, 울지마라. 응? 네 어머니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야. 내가 애초에 거짓말해서…
-나는 그걸 이십, 이십몇년동안… 멍청이 같이.
-허니가 멍청한거 아니지. 아저씨가 멍청한거지. 응? 내가 멍청한거니까 허니는 그런생각하면 안돼.
보심슨이 울기직전의 허니를 달래주려 얼굴을 쓰다듬어주었음. 허니는 그런 그에게 화를 내야할지 울어야할지도 몰라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음. 이제는 너무 커버린, 아이가 아닌 쫄따구는 아저씨에게 예전처럼 매달려 엉엉울수도 없기에 그렇게 속으로 슬픔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음.
아저씨도 아저씨대로 아이가 아닌 허니를 들어올려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침대에 눕혀 재워줄수가 없어서 그녀의 볼만을 쓰다듬어줄뿐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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