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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한 대협영수 보고싶다앱에서 작성
ㅇㅇ
24-02-26 15:35
ㅡ 지구가 멸망하려나 봐..
눈을 보기 힘들고, 와 봤자 바닥에 엷게 쌓이는 정도인 지역에서 폭설주의보가 발령되고 대중교통이 정지될 만큼 눈이 온 건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다.
자동차 바퀴며 사람들의 발에 수없이 짓밟혀 회색빛으로 뭉개진 눈웅덩이를 발견한 영수가 진저리를 치자, 곁에서 나란히 걷던 대협이 작게 웃으며 그나마 바닥이 덜 엉망인 제 쪽으로 영수를 당기려 할 때,
ㅡ 어, 어! 야! 윤대협!!
아슬아슬하게 인도와 도로의 가장자리를 걷던 대협의 곁으로 대형 트럭 한 대가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건지 비틀대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본 영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끼이익-!!!
ㅡ 이.. 미친!! 야 이자식아!! 운전 발로 하냐!! 사람을 칠 뻔 했으면 내려서 사과라도 하던가!! 어우 씨... 괜찮냐?
뛰어난 반사신경 덕에 먼저 튀어나간 손이 대협의 허리춤을 홱 잡아챘고, 그 서슬에 균형을 잃은 대협은 아무런 부상 없이 인도 반대편 벽 근처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단 한 가지 문제라면 방금 전의 노호성이 대협의 등 뒤에서 터져나왔다는 것.
대협이 서둘러 일어나 보니, 영수가 아까 전의 눈구덩이에 보기 좋게 처박힌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ㅡ 넌 어디 안 다쳤어?
ㅡ 나 말고 옷이 많이 다쳤다.
말마따나 반쯤 녹아 진창이 된 눈이 스며든 영수의 옷은 바지고 점퍼고 할것없이 엉망이었다.
신발 안까지 눈이 들어갔는지 신고 있던 스니커를 벗은 영수가 신발을 뒤집어 털며 짜증을 부렸다.
ㅡ 아.. 전차 타야 하는데... 꼴이 이래서 탑승거부 당하는 거 아냐?
축축한 옷을 털어내며 골을 내던 영수는 제 어깨에 척하니 얹히는 무게에 가자미눈을 뜨고 대협을 돌아보았다.
ㅡ 뭐 하냐? 도로 입어라. 감기 걸려.
하지만 대협은 영수의 어깨에 걸쳐진 제 코트를 단단히 여며 주곤 소맷자락에 덮인 영수의 손을 잡았다.
ㅡ 우리 집 바로 저기잖아. 너야말로 그대로 가면 감기 걸릴라. 옷 빨고, 씻고, 따뜻한 거 마시며 몸 좀 녹이다 가는 게 나을 텐데. 너만 괜찮다면 자고 내일 가도 되고.
이미 대답을 들었다는 것처럼 자신을 끌고 가는 대협의 손에 이끌려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내딛던 영수는 곧 한숨을 내쉬며 대협의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사귀기 전인 1학년 때부터 몇 번 드나들기 시작해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일 주일에 한두 번은 찾았던 대협의 원룸은 이제 눈 감고도 찾아갈 정도였다.
대협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치 자기 집인 양 들어선 영수는 대협의 코트를 벗어 걸어 두고는 시스템키친 한쪽의 세탁기 앞에서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다 말고 달라붙는 듯한 시선에 손을 멈췄다.
ㅡ 뭘 봐?
나갔다 온 차림 그대로 아일랜드에 기대 서서 영수를 보던 대협의 표정엔 흥미에 가득찬 미소가 돌고 있었다.
ㅡ 아니, 살다 보니 영수가 눈 앞에서 스트립쇼도 보여주는구나 싶어서.
ㅡ 무, 뭐? 뭐어??
ㅡ 너 매번 부끄럽다면서 한밤중 침대 안에서도 암막커튼 다 치고 불도 전부 꺼야 겨우 옷 벗기는 거 허락해 줬는데, 오늘은 훤한 대낮에 침대도 아닌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서는 심지어 자기 손으로 벗고 있잖아. 뭐 해? 마저 안 벗고. 감기 걸린다?
ㅡ .......가, 나가!! 나가아악!!!
ㅡ 어? 영수야, 여기 우리 집..!
ㅡ 시끄럽고 나가아아아아!!!!!!
결국 집에서 내쫓긴 대협은 더럽혀진 영수의 운동화를 세탁소에 맡기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젖어 버린 속옷을 새로 사고 나서야 겨우 다시 집 앞에 설 수 있었다.
ㅡ 열쇠가.. 어디.. 억!!
현관 앞에서 코트며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대협은 눈 앞에서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ㅡ 넌 너희 집 문도 못 여냐?
ㅡ 어? 어어...
두툼한 타월지 소재의 하얀 배스로브를 걸친 영수의 젖은 머리며 어깨 위로는 보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멀뚱히 현관 앞 복도에 멈춰서 버린 대협은 본체만체 영수가 다시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뒤로도 잠시 고장나 있던 대협은 한 발 늦게 집으로 들어갔다.
털털대며 열심히 돌아가는 세탁기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던 영수는 자꾸 벌어지는 가운의 앞섶을 손으로 쥐어 여미다 대협을 돌아보았다.
ㅡ 아, 이거? 욕실 수납장에 있길래 마음대로 꺼내 입었는데. 비싼 건가?
ㅡ 어? 아냐. 선물받아서 갖다두긴 했는데 한 번도 안 입은 거니까 마음에 들면 가져가도 돼.
ㅡ 됐거든? 맞지도 않는 걸 내가 뭐하러.
입을 한 번 삐죽인 영수는 자연스레 냉장고를 열어 냉침밀크티가 든 저그를 꺼내 머그컵에 부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린 뒤 찬장에서 홍찻잎이 들어 있는 캔을 꺼내 스트레이너에 찻잎 두 티스푼을 담아 새로운 머그에 넣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사이 레몬꿀절임이 든 통을 꺼낸 대협은 자신의 머그에 레몬 두 조각을 넣고 나서 종료음을 울리는 전자레인지 안 머그엔 레몬을 절여 두었던 꿀을 크게 두 스푼 타고는 마지막으로 제 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는 두 손에 각각 머그 한 개씩을 들고서 식탁 앞에 앉았다.
ㅡ 거기 말고, 여기.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려는 영수를 잡아끌어 무릎 위에 앉힌 대협은 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머그를 감싸쥔 영수의 허리를 등 뒤에서 꼭 감싸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숨결이 간지러웠는지 이리저리 몸을 틀던 영수가 결국 몇 모금 마시지 못한 머그를 아일랜드에 내려놓고 몸을 반쯤 돌려 대협의 이마에 콩 하고 머리를 부딪혔다.
ㅡ 왜 그래?
ㅡ 너 오늘 멋있더라. 새삼 반했다.
ㅡ 뭐가.
ㅡ 그냥.
남자라는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남들보다 큰 키며 우월한 체격조건 때문에라도 누군가와 만나며 에스코트를 할 일 말고 받을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영수와 만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보다 한 뼘은 작은 영수는 남자이긴 하더라도 대협의 눈에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돌이켜 보면 오늘처럼 보호받았던 적이 꽤 있었다.
능남의 치와와라는 별명은 역시나 괜히 붙은 게 아니었구나.
수틀리면 보호자까지 물어 버리는 맹견 중의 맹견이 내 남자친구라니 새삼 든든하면서도 불안한 이 기분은 뭔지.
포근하게 결이 살아 있는 배스로브의 목깃에 뺨을 부비던 대협은 기분 좋게 웃으며 영수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살내음을 실컷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ㅡ 이러니까 복슬복슬하니 진짜 강아지 같네, 우리 영수.
ㅡ 혼난다 너.
은근슬쩍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손길을 입으론 타박하면서도 직접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영수의 반응에 기분 좋게 자신과 같은 향을 풍기는 촉촉한 피부를 즐기던 대협의 눈에 바닥에 아무렇게 내팽개쳐져 있는 편의점 비닐봉투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저걸 전해 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ㅡ 우와악!
앉아 있던 그대로 영수를 번쩍 안아들고 일어난 대협은 그대로 침대로 돌진해 영수를 내려놓고는 가운 앞섶을 확 열어제쳐 버렸다.
역시나, 예상 그대로의 광경이 펼쳐진 걸 확인한 대협의 입꼬리가 비죽이 올라갔다.
어쩌나.
오늘은 커튼으로 가려 주기엔 이미 너무 자극적인 걸 봐 버렸는데.
ㅡ 윤대협 너 진짜아...!
ㅡ 응, 미안.
그렇게 시작된 성급한 키스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새콤달콤한 맛이 났다.
슬램덩크
센코시 대협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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