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본문 영역
"아저씨.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요."앱에서 작성
ㅇㅇ
24-02-18 22:39
"아저씨 단 거 좋아해요?"
https://hygall.com/584673145
그 입맞춤 이후로 남자와 내 사이에 뭔가 대단한 게 생긴 건 아니었다.
관계 발전이랄 것도 없었고, 남자는 여전했다. 설마 내가 꿈을 꾼 건가? 사실 그때 입술이 안 닿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헛소리를 해댔고 내 타박에는 특유의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속 좁은 사람 마냥 그때 그 초콜렛 다시 내놔요!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고 그럴 때마다 남자는 제 배를 문지르며 "그거 이미 소화 다 됐어."하고 윙크를 날릴 뿐이었다.
어쨌건 사람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갖다 박아놓고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다고? 하다 못해 데이트를 청하는 제스처라도 취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빌어먹을 아저씨가 날리는 건 늘 가볍고 경쾌해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길이 없단 말이다. 그렇게 내 안에 서운함이 스멀스멀 쌓여갔다. 정작 남자가 다가오면 무서워하며 주춤할 거면서. 어떻게든 밀어낼 거면서.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이기적인 마음이 내뜻대로 제어되는 건 아니니까.
좀 힘든 날이었다.
유달리 몸이 무겁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날 그렇게 만드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개중 남자도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당사자가 눈 앞에 나타나서 껄렁거리며 웃는데 기분 좋은 반응이 나갈리가.
"꺼져요."
"와우. 나 상처 받았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차갑네."
저 같잖은 말장난 받아 줄 힘 전혀 없다니까. 더 이상 대꾸할 마음도 들지 않아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가면 남자는 의외로 별 말 없이 뒤를 따랐다.
"왜 따라와요!"
"나도 내 집 가는 건데. 잊었어, 선샤인? 나 네 옆집이야."
"......짜증나."
그걸 누가 몰라. 알면서 그냥 시비 건 거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니까. 이상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계단이 왜 이렇게 울렁거리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것 같잖아. 이게 뭔 건반도 아니고. 생리 할 때가 다가와서 그런지 몸이 전체적으로 안 좋은 건지. 아까 진통제는 챙겨 먹은 것 같은데. 숨소리가 입술 틈으로 거칠게 새어 나왔다. 그럴 리 없겠지만 남자가 눈치 챌까봐 그마저도 겨우겨우 삼켜냈다.
그렇게 집 앞에 멈춰 서서 열쇠를 꺼내는데 손이 뜻대로 안 움직였다. 내 가방 안에서 자꾸만 헛도는 손에 힘을 주는데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선 남자가 내 한쪽 팔을 잡아 끌었다. 평소처럼 뿌리칠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맥없이 끌려가니 남자가 내 이마에 제 이마를 갖다 댄다.
"뜨거운데."
"......"
"이상하더라니. 약 먹었어?"
"......"
"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남자가 내 눈가를 검지로 살살 닦아냈다. 진짜 이 아저씨 짜증나네. 느리게 꿈벅거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내 가방을 받아 들어서 문을 딴다.
"......열쇠 없어도 딸 수 있으면서 되게 정직한 사람인 척 하네."
"웁스. 그렇게 사람 정곡을 찌르면 아파."
팔랑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남자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랬는데 사람을 막 안고 그러네.
남자 말대로 열이 나는 게 맞았는지 온몸이 축 처진다. 불시에 몰려드는 오한에 몸을 오들오들 떨자 남자가 침대에 조심스레 날 눕혔다.
물수건을 찾으러 가려는지 움직이는 남자의 소매 자락을 붙들었다.
"어디 가는데요. 추워요. 이불 좀 주고 가요."
"그렇게 열 날 때 이불 뒤집어 쓰고 그러면 안 돼."
"왜 안 돼. 너무 추운데..."
서러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몸을 웅크리자 남자가 멈칫하며 나를 바라봤다. 난처하다는 듯 제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내 위에 덮어준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팔을 크게 움직여 한 품에 나를 꽉 끌어안았다.
"아니, 이불을 주면 되지. 왜 사람을 껴안고 난리지..."
"아픈 거 나한테 옮기라고. 이불 걔는 코도 없고 입도 없어서 너 아픈 거 데려 가지도 못해. 아무래도 저 촌스러운 줄무늬 이불보다는 내가 더 낫잖아."
자기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눈치 챈 건지 남자는 오늘따라 말을 많이 했다. 그렇게 한참을 끌어 안고 있던 남자는 "너 약 먹어야 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숙하게 찬장을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여전히 머리는 울렸다. 집에 사람 들인 게 얼마만이더라.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제멋대로 살았었는데. 외로움은 친구같은 거니까 버릴 수 없다면 그냥 품고 가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적신 수건이 이마 위에 안착한다. 차가워. 인상을 찡그리면 남자가 내 등을 쓸어내리며 살살 일으켜 세워준다.
몽롱한 기분에 고분고분 약을 받아 먹고 뜨거운 숨을 뱉으니 남자가 손으로 조심스레 내 뺨과 목의 온도를 살핀다.
"...어디 안 갈 거죠."
"나? 내가 어딜 가? 너 이러고 있는데 뭐 어딜 가. 가라고 엉덩이 걷어 차도 안 가. 그리고 찰 거면 살살 차줘. 간병인 마저 아프면 상황 꼬이니까."
내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남자가 대답한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있으면 금방 뜨거워진 수건을 갈아주곤 손등으로 뺨을 꾹 누른다.
"오늘따라 아저씨 말 되게 많네."
"네가 불안해 하는 거 싫어서. 나 진짜 진짜 어디 안 가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할까봐. 마음 같아서는 동화라도 줄줄 읊어주고 싶은데 내가 외우고 있는 게 없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음. 인어공주 이야기 이런 건 진부하잖아. 너도 다 알 테고."
"......근데 듣기 나쁜 건 아니에요. 계속 떠들어요."
"그럴까? 이런 상황에 이런 이야기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 봤던 나라 얘기라도 해 줄게. 일단... 어디부터 시작할까."
지난 기억을 가늠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의 손가락 하나에 슬쩍 내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엄지로 내 손을 살살 쓰다듬으며 계속 해서 말을 내뱉었다. 저러다 목이 죄 쉬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끝없이.
샘록웰너붕붕
추천 비추천
0
0
댓글 영역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