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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화블 알렉스헨리 서로 원수집안인 거 보고싶음 끝나더앱에서 작성
ㅇㅇ
23-12-05 13:32
전편 : https://hygall.com/575110495
로미오와줄리엣같은 원수 집안 설정으로 역사알못ㅈㅇ 알오ㅈㅇ
헨리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뭘 했다고?”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는 헨리를 내려다보는 필립의 얼굴은 분노로 차갑게 굳어있었다.
“그 자식은 내일 내 손에 죽을 거야. 이 일은 아무도 모를 거고 넌 예정대로 다음 주에 결혼하는 거야. 어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은 걸 다행인 줄 알아.”
“부탁이야. 제발 알렉스를 내버려 둬. 내가 잘못했어. 결혼을 깰 생각은 전혀 없었어.”
헨리는 더 이상 무언가를 따지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필립의 발치에 무작정 무릎을 꿇었다. 편지를 제대로 간수했어야 했는데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고 그대로 머리맡에 둔 걸 하필 필립에게 들킨 것이다. 남의 편지를 왜 읽었냐는 소리 따위는 통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온 도시가 뒤집히고도 남을 엄청난 비밀이 드러난 순간, 자신의 어리석음에 스스로에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고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자리에서 헨리에게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는 필립에게 애원도 하고 빌어도 봤지만 필립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이 헨리를 찾아와 알렉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는 통보를 한 것이다.
“필립 제발 다시는 안 만날게. 내가 잘못했어. 제발 취소해줘.”
“소용없어. 이미 그 자식한테도 연락이 갔을 거야.”
“나보고 지금 둘 중에 한 명이 죽는 걸 보라는 거야? 차라리 나더러 그냥 죽으라고 말해.”
“니가 지금 나보다 고통스러워? 내 동생이 내 아버지를 죽인 집안의 자식이랑 붙어먹었다는데 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수치스럽고 치가 떨려서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어.”
헨리는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필립의 다리를 끌어안듯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내가 알렉스한테 다가간 게 시작이었어. 내가 알렉스를 먼저 좋아한 거야. 알렉스는 아무 잘못이 없어.”
필립은 배신감에 찬 눈으로 헨리를 내려다보며 몸을 떨었다.
“너 정말 내 동생 헨리 맞아?”
“미안해 정말. 이제부터 죽은 듯이 우리 집안을 위해서만 살게. 제발 알렉스를 살려줘. 형이 죽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 제발 나한테 이러지마.”
“태어날 조카를 볼 때마다 그 자식을 떠올리게 될 텐데 나더러 지금 이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내가...내가 절대로 다시는 알렉스를 만나지 않을게. 약속해.”
헨리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정신없이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알렉스의 손에 필립이 죽는 것이든, 필립의 손에 알렉스가 죽는 것이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자신에게 없을 것 같았다. 귀족 부모를 둔 아이들은 대체로 정해진 시간에만 부모를 만났기 때문에 유모나 형제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게 필립은 어머니나 아버지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알렉스는...이제야 겨우 마음이 통한 연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헨리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나한테는 형이 엄마나 아빠보다도 더 가까운 가족이었어. 제발 나 좀 살려줘. 부탁이야.”
필립은 헨리를 노려보다 더 그 곳에 있기 싫다는 듯 제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헨리를 거칠게 뿌리치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헨리에게 남은 건 절망뿐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건 지옥이었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 그냥 죽어버릴까. 헨리는 불쑥 닥쳐든 생각에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려다 황급히 뛰어 들어 온 유모 때문에 겨우 저지되었다.
“미쳤어요? 그렇다고 이러면 안 돼요.”
유모는 헨리를 붙잡아 끌어안았다.
“나 그냥 죽을래. 필립이 죽든 알렉스가 죽든 나는 못 견딜 거야.”
“아기는요? 아기는 어떻게 할 건데요?”
“그렇게 태어난 아기를 내가 어떻게 사랑하겠어. 다 나 때문이야.”
헨리는 유머의 품에 안겨서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끼니도 죄다 거르고 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 새벽녘의 희미한 햇살이 눈가를 간질이는 기척에 깼을 때, 헨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필립이 자신을 굳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무슨 일이야? 설마 아직 알렉스랑 결투를 하진 않았지...?”
필립은 말없이 헨리에게 피가 묻은 칼을 보여주고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헨리는 바들바들 떨면서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죽였어...?”
“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필립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 말만을 내뱉고 돌아섰다. 혼자 남은 헨리는 한참만에야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 자신이 편지를 들키지 않았다면 알렉스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자신이 알렉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알렉스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그때 그 영주의 파티에서 알렉스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알렉스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알렉스는 오로지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다. 자신의 멍청함과 부주의함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죽인 것이다. 헨리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뛰어내려 따라 죽을 작정으로 비틀거리며 발코니로 향해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헨리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 이상 커다래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뜨인 눈에 다시 한 번 눈물이 차올랐다.
“헨리, 팔을 좀 다쳐서 그런데 손 좀 잡아줘.”
알렉스가 그 언젠가처럼 기둥을 타고 발코니를 향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알렉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볼까봐 허둥지둥 알렉스에게 팔을 내밀어 끌어올린 헨리는 목소리를 낮춰 빠르게 속삭였다. 알렉스의 왼쪽 팔뚝은 피가 묻은 붕대로 감겨있었다. 헨리가 걱정스레 그곳을 어루만지자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헨리의 뺨에 키스했다.
“네 형이란 사람 엄청 무섭던데.”
“필립이 그런 거야?”
“응. 근데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시간이 없어. 동이 완전히 트기 전에 떠나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살려주는 대신에 너랑 도시에서 꺼져버리래.”
헨리는 방금 전 필립의 얼굴을 떠올리고 뜨거운 감정이 차올라 알렉스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랑 같이 가줄 거지?”
눈썹을 늘어트리고 묻는 알렉스의 얼굴에 거절당하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싫다고 하면 그냥 갈 거야?”
“아니.”
햇살처럼 웃는 알렉스를 바라보면서 헨리는 이보다 더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다고 느꼈다.
*
샤안은 외투를 잔뜩 껴입었음에도 파고드는 강한 겨울바람 때문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걸음을 서둘렀다. 어제부터 이 근방을 돌며 몇 번이고 확인을 했으니 지금 눈앞에 있는 곳이 자신의 목적지가 분명했다. 그들이 떠나온 곳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꽤나 아늑해 보이는 작은 집 앞에 선 샤안은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잠시 차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남자는 키가 크고 한 눈에 보기에도 수려한 외모의 미남이었다. 사랑의 도피를 한 이유가 이거였나. 샤안은 속으로 조금 웃었다.
“무슨 일이시죠?”
“갈 길이 먼데 추위가 심해서 그런데 잠깐 몸 좀 녹일 수 있을까요.”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때, 집 안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날이 너무 추워서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냐는데.”
“들어오시라고 해.”
남자는 샤안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눈짓을 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 샤안으로선 꽤나 다행이었다. 벽돌로 지은 집은 적당한 크기에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벽난로에선 따뜻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샤안은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다 벽난로 앞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창백한 안색의 남자를 잠시 응시했다.
“여행객이신가봐요.”
집안에서도 옷을 잔뜩 껴입고 있는 사람의 품에 안긴 아기에게 잠시 시선이 멈춘 샤인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아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괜찮아요.”
“샤안입니다.”
이름과 함께 손을 내미는 샤안에게 맞잡아 오는 손은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헨리에요.”
살풋 웃던 눈매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남자를 향해 시선이 옮겨졌고 샤안은 그가 건네는 차를 받아들었다. 아기와 남자가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샤안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확인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시했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어요?”
“아직 1년도 안 됐어요.”
헨리의 옆에 앉은 알렉스가 자연스럽게 헨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정하게 붙어 앉아 아기를 들여다보고 차를 마시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저 행복한 커플 같았다. 두 사람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집안을 둘러보니 뭐가 많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한 건 없어 보였다.
“올 겨울은 유독 추위가 심하네요. 뗄감은 충분한가요?”
“뭐...그럭저럭이요. 요새는 헨리랑 아기만 둘 수 없어서 일을 못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그러다 곧 돈이 떨어질 텐데요.”
“그땐 다시 일을 할 거예요.”
추궁하듯 묻는 샤안을 알렉스는 조금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샤안은 더 이상 말하기를 그만두고 차를 마셨다. 어차피 이 정도면 자신을 고용한 헨리의 형이라는 남자에게 전할 얘기로는 충분한 것 같았다. 샤안은 두 사람이 서로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품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 제 발밑에 슬쩍 내려놓았다. 헨리의 형이 이 집에 두고 오라던 돈이었다.
“이제 다시 가봐야겠네요. 차 잘 마셨습니다.”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요.”
“그러니까 얼른 출발해야죠.”
샤안은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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