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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촌뜨기 미용사였던 나를 고용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앱에서 작성
ㅇㅇ
24-02-28 00:35
그래서 모두가 꿈 꾸던 기회가 나에게 굴러들어왔을 때, 기쁘기보다는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보조 딱지를 떼고 정식 미용사로 일한 지 두달이 채 안 되었을 때 허니가 미용실로 들어왔다. 촌스러운 간판이 걸린 시골 미용실에 모르는 이 없는 유명 배우가 방문할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길을 물으러 왔나 싶어 내비게이션 앱을 켤 준비를 했다. 하지만 허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신입한테 맡겼더니 머리를 조져놨네. 그 쪽이 다시 다듬어줘요."
허니는 원장이 아닌 나를 콕 집어서 말했고, 나는 더듬더듬 자리로 안내했다. 그 뒤로는 너무 긴장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보기에도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허니는 손거울로 뒷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다 나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고, 변변한 명함도 없던 나는 잡지 귀퉁이를 찢어 번호를 적어줬다. 원장님은 서둘러 사진 한 장을 부탁했고 허니는 대수롭지 않게 원장과 사진을 찍어줬다. 허니가 떠난 후 나와 원장은 호들갑을 떨며 허니 비를 만났다고 옆 집 부동산과 구멍가게에 자랑했다. 그렇게 허니와의 일은 끝인 줄만 알았다.
보름쯤 지났을까, 손님의 머리를 말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폰을 어깨에 끼우고 전화를 받자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폭스 씨 맞으시죠? 허니 씨가 새로 구한 헤어 디자이너라고 해서 연락 드렸는데요."
이 황당한 말에 나는 원장에게 파마약을 떠넘기고 제대로 폰을 들었다. 면접도, 포트폴리오도 필요 없으니 당장 오늘 상경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넋이 나가 원장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원장은 빨리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이게 이 지긋지긋한 인연의 시작이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허니 비 전속 헤어 디자이너다. 아니, 헤어 디자이너 겸 매니저 겸 감정 쓰레기통 겸 애착인형 겸... 아무튼 그렇다. 세상에 널린 게 실력 있는 미용사고, 애초에 나를 왜 데리고 왔는지도 모르겠으나 허니는 나를 착실하게 써먹었다.
"프레디! 오늘 스케줄 브리핑 해줘."
"프레디! 물!"
"프레디! 잔머리 나왔잖아!"
"프레디! 나 외로우니까 오늘은 집에 가지 마."
허니 비는 모든 스케줄에 나를 데리고 갔고 이제는 내가 없으면 모든 일정을 펑크내겠다고 협박했다. 월급은 섭섭지 않게 준다지만 저 '프레디' 소리와 신경질에 노이로제가 올 지경이었기 때문에 나는 몰래 이직을 준비했다. 들키면 허니 비가 어떻게 돌아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비밀로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발각되고 말았다.
"프레디님,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저 커피만 사가지고 갈게요."
"아니.... 지금 완전 돌았어요. 사무실에 있는 거 다 집어던지고 난리예요."
".....바로 들어갈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허니가 있는 층에 도착하자 모두 숙연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복도 귀퉁이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니, 무슨 일,"
"너."
허니가 나에게 노트북을 집어 던졌다. 내가 가까스로 잡은 노트북 화면에는 모 패션 브랜드에서 보낸 합격 메일이 띄워져 있었다.
"네가 감히 날 떠나? 말도 없이?"
"그게 아니라,"
"닥쳐. 네가 여기까지 온 거 다 내 덕분이란 거 잊었어? 배은망덕한 새끼. 시골에 처박혀 있는 거 데려와서 애지중지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네."
"내가 부탁했어?"
"뭐?"
"내가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이라도 했냐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지 멋대로 군 건 생각 못 하나 보네."
"다들 좋아서 환장하는 기회를 줬으면 고분고분 굴어야지."
"네 뒤치다꺼리 하는 거 신물 나.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것도 이제 끝났어."
"끝이 나?"
허니 비는 고개를 숙이고 소름 돋게 웃다가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턱을 움켜쥐었다. 턱뼈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다.
"아직 모르나 본데, 넌 날 못 벗어나."
프레디여우너붕붕
프레디폭스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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