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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밥 타임루프 첩보물 ㅅㄴㄷ앱에서 작성
ㅇㅇ
24-03-3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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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짧음 ㅈㅇ
나는 당신의 시간이 되고 싶었어
당신을 늙게 하고
당신을 마모시키고
당신을 좌절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살아있게 할
당신의 시간, 당신의 세월
Part3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내가 제이크 세러신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죽기 7년 5개월 9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시간의 뒷문을 드나든다. 내 조부가 말하길 이 저주는 격세유전되는 형질에 기인한다. 나는 이 ‘시간의 뒷문’을 통해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잉태된 시점 이후로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 덕분에 미래는 계속해서 바뀌었고 과거는 언제나 소실되어 왔다. 내 조부는 내 아버지가 대통령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나를 이용했다. 나는 ISIS에 저항하는 온건파 반군과의 연합작전으로 중동은 오랜만에 임시방편의 평화를 얻었고, 중앙 아프리카 지역 군벌 세력을 소탕하고 유럽에서 교육을 받은 대통령이 이끄는 정권이 자리 잡게 하면서 천연가스와 석유 채굴권이 러시아 정부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도왔다. 덕분에 아버지는 대통령이 되었다. 제이크 세러신을 만난 것은 아버지의 재선을 위해서 내가 ‘본부’에 잠입해 있던 때의 일이었다.
나와 같은 저주를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아무런 필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일이든 그 인과 관계의 접착력은 결속된 것이 아니라 아주 느슨하고 연약해서 나같이 뒷문으로 드나드는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도 쉽게 끊어지곤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의 영속성에 회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물질과 가치가 시간에 취약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다이아몬드의 필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이아몬드를 구성하고 있는 탄소 간의 결합이 결코 견고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는 다이아몬드였다가 그 다음 순간이 되면 다이아몬드는 흑연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어떤 일은 내가 손가락을 튕기기만 해도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결코 누구의 힘으로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함도, 전쟁도, 고통과 증오까지도, 모든 것은 어떤 거대한 계획이나 필연적인 원인이 있거나, 그러한 결말을 위한 단초가 아니다. 모든 것은 그저 시간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렇게 쉽게 부패하고 만다.
나같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신의 실수나 오류인가? 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모순에 이르거나, 내가 다른 그의 피조물과 다름없는 완벽한 신의 설계라는 가설에 이르게 되면? 어떤 신도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고, 인간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신에게 이 세계는 그저 바쁜 어느 때에 틈을 내어 장기말을 두는 것 같은 유흥거리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그저 나같은 존재로 확인하게 되면 나는 유신론자의 가장 깊숙한 구렁텅이에 빠진다. 신을 믿되 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신을 긍정하되 그를 두려워 하지도, 그를 경외하지도 못하는 것.
그렇게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고, 어떤 원인도 강력하게 결과를 견인하지는 못하고, 그저 시간의 뒷문을 드나드는 나같은 존재에 의해서 언제든, 무엇이든, 무너지거나 새로 직조되거나 순식간에 전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삶은 비로소 사명도 관성도 아닌 다른 동력으로 움직이게 된다.
"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내가 제이크 세러신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죽기 7년 5개월 9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나는 당에서 약해지기 시작한 아버지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그의 정적들을 취약점을 찾아내 세상에 드러낼 목적을 가지고 ‘본부’에 잠입해 있었다.
“반가워요 ‘미스터 플로이드’”
그는 내가 ‘플로이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스물다섯살이었지만 이미 100년을 산 것 같이 늙어버린 침울하고 비관주의적인 남자애였다. 내가 원하지도, 의지도 없이 유전된 형질 때문에 뒷문으로 드나들며 시간을 유영해야만 하는 처지였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혹은 그로부터 살렸다. 세계는 그렇게 노쇠해져 능력을 쓸 수 없게된 내 할아버지 대신에 내 손에 의해서 직조되고 있었고 그 모양이 세밀해질수록 나는 내게 이런 저주를 내린 신을 미워하며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의 축적 속에 외로워 했다.
이스탄불은 그를 만나기 전까지 뜨겁고 건조한 도시였다. 후텁지근한 도시의 공기 속에서 그저 코드명으로만 존재했던 내게 서슴없이 대통령의 성을 붙이며 악수를 내민 제이크 세러신은 영원한 다이아몬드 같았다. 나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마치 원래 그래야 했던 것처럼,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어떤 인력에 의한 것처럼, 의문도 의심도 끼어들 겨를이 없이. 나는 비로소 신이 내게 어떤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에 빠지기에 이른다. 나에게 저주를 내린 대신 내게 제이크 세러신을 준 것이라고.
내가 제이크 세러신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죽기 7년 5개월 9일 2시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시간을 뒷문으로 드나들며 100년을 넘게 산 것 같은 남자애였지만, 인생을 통틀어 오로지 사랑은 7년 5개월 9일 2시간 동안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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