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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잨너붕붕 뻔한 롬콤 십일나더앱에서 작성
ㅇㅇ
24-03-25 21:50
그러니까 맹세코 허니는 이렇게까지 남자친구랑 잘 지낸 적이 없어서, 조금 낯설었다. 좋기는 너무 좋은데, 이렇게까지 엄청 친한 친구 느낌이 나도 되나? 싶다가도 테일러의 넓은 등짝이, 두꺼운 팔뚝이, 잘생긴 얼굴이 '내가 친구라고?' 하고 물어오는 것 같아서 정신을 차렸다.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와서 성게 껍질을 벗기는 데 집중하고 있는 테일러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 근데, 솔직히 말하면요."
"네, 솔직히 말하면?"
"테일러 만나기 전에는 주말에 뭐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나 뭐하고 살았지?"
"음... 자기 일만 하거나 밖에 잘 안 나갔을 거 같은데요? 지금도 날씨 안 좋으면 한발짝도 안 나가면서. 자, 아 해요."
"그거야 맞죠. 뉴욕은 나가봤자 사람만 많으니까. 아- "
내장을 씹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허니를 보고 테일러가 음료를 내밀었다. 벌컥벌컥 마시더니 안 먹을래요, 하면서 테일러에게도 음료를 내밀었다. 다른 해물은 잘 먹더니. 성게만 유독 입맛에 안 맞나 보다. 하며 테일러는 남은 성게를 제 입에 털어넣었다. 피부가 타면 까매지지는 않고 껍질만 벗겨져서 고생하는 허니 탓에 차에 파라솔을 담고 다닌지도 꽤 됐다.
허니가 귀찮아해서 그렇지, 요리도 제법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허니가 제일 좋아하는 착장은 트레이닝복 셋업이지만, 제일 잘 어울리는 건 푸른 계열의 셔츠라는 것도. 개와 아이를 좋아하고... 빨래는 싫어하지만 설거지는 좋아한다는 것도. 이만큼 알게 되면 지겨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그런 마음이 한 톨도 들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이제 슬슬 들어가서 씻고 낮잠도 한숨 자고, 저녁 먹으러 나올까요?"
"... 들어가기 싫은데."
"이따 밤에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해도 되잖아요."
"바다랑 수영장은 다르단 말이에요. 제발요-"
항상 먼저 들어가자고 하는 건 허니였는데, 여름 휴가도 길게 못 갈만큼 큰 소송을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탓인지 허니가 고집을 부려서 테일러는 당황했다. 지금 재워야 허니가 이따가 저녁 먹고 밤산책을 나가자는 제안에도 좋다고 할 거고, 그러면 바닷가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다.
지지난주에 허니와 꾸벅꾸벅 졸며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대적인 프러포즈를 하는 걸 보고 허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모두의 관심 받는 거 좀 창피해서 싫어요. 하는 말에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가 좀 잡힌 참이었다. 그러려면 허니를 지금 무조건 달래야 했다.
"아이구, 내가 딸을 키우지. 알았어요. 내일 또 나와요. 지금 들어가서 안 쉬면 자기 쓰러져요."
삐쭉 나온 입술을 꾹 누르며 말하자 그제야 끄덕거리는 허니였다. 더 놀겠다고 고집 부린 건 어느집의 누구였는지,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테일러가 머리를 말려줄 지경이었다. 침대로 기어가다시피 하더니 머리를 뉘자마자 기절했다.
테일러는 그런 허니를 보며 소리도 못내면서 웃다가, 자켓 안주머니에 반지를 챙겨넣고 허니의 옆에 누웠다. 저녁시간 내내 온통 프러포즈 생각 뿐이라서, 허니가 뭐라고 종알거리는데도 한박자 늦게 대꾸하곤 했다.
"우리 배부른데 바닷가나 걷다 들어갈까요?"
"음... 그래요!"
둘은 허니가 좋아하는 초코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눠먹으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아직 꺼지지 않은 길거리 상인들의 좌판 조명이 반짝거렸다. 허니는 손을 놓고서는 멀리 보이는 그네 벤치에 달려가더니, 제 옆자리의 모래를 털고서는 탁탁 치며 앉으라는 듯 고개로 가리켰다. 해맑게 웃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허니는 자기가 곧 프러포즈를 받게 될 거라는 걸 알까?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 했다. 겉옷을 벗어 허니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자연스럽게 반지 케이스를 꺼내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바닷가를 쳐다보다가 제게로 고개를 돌린 허니가, 반지를 보고서야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는지 두손으로 입을 한참 틀어막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돼서부터 내가 우리 결혼할 거 같다고 해서 세뇌 같긴 한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한테는 평생 같이 살고 싶은 건 허니라서요. ... 허니, 나랑 결혼해줄래요?"
허니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며 테일러의 손을 잡아 일으켰고, 테일러는 허니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줬다. 둘은 한참이나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있다가, 허니가 몸을 떼어내고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 지금 타이밍이 되게 웃긴 건 아는데요. 이번에 인센티브를 좀 많이 받아서, 뭘할까 하다가... 테일러가 내꺼라고 표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도 뭘 좀 사왔거든요. 볼래요?"
허니가 풍성한 치맛자락 틈새에 있는 주머니에서 꺼낸 건 제 것과 비슷한 반지케이스였다. 어쩐지, 지난 주에 저 원피스를 사더니 주머니가 있다며 한참 자랑하던 게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옷에 주머니가 있는 게 그렇게 기쁠 일인가, 했는데 설마 이걸 생각하고 그런 건가. 반지케이스가 열리고 보인 건 누가 봐도 웨딩밴드였다.
테일러, 나랑 결혼해줄래요? 바람에 흩날리는 허니의 짙은 머리카락이, 환히 웃는 미소가, 멀리서 비춰지는 조명이, 아주 쌀쌀하지만은 않은 온도의 조화가 너무도 완벽해서 평생, 죽을 때까지, 어쩌면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테일러는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지만 대답이 먼저라서 끄덕거렸다.
"... 당연히, 할래요. 결혼."
태연한 척했지만 허니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제 손에 끼워준 웨딩밴드가 딱 맞아서 더 감동이 밀려왔다. 바쁘면서 반지 치수는 언제 알아냈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기 아침에 업어가도 모르잖아요. 거의 숲속의 잠자는 테일러니까 잘 때 쟀죠. 하며 코를 찡긋거리는 게 사랑스러워서 꼭 끌어안았다.
프러포즈에 대한 대답이 프러포즈라니.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예기치 못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 제 아내가 될 거라니 눈물이 자꾸 났다. 사랑해요. 나도요. 내가 더 사랑해요. 내가 자기 많이 사랑하지만 그거 말도 안돼요. 사랑고백으로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입을 맞추길 반복하다가 호텔로 천천히 걸어갔다.
냅다 쌍방프러포즈
ㅎ 글등록 누르자마자 날아가서 ㄹㅇ 당황함 햎 왜 이러냐ㅠ
테잨너붕붕
#테잨뻔한롬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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