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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파리어앱에서 작성
ㅇㅇ
23-12-07 15:04
파리어. 상대방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책장을 넘기던 소리가 들리지 않자 콜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이제 그만해요. 여전히 파리어는 말이 없었다. 답답한지 눈을 꾹 감고 마른 세수를 한 콜린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위님도 아시잖아요. 이대로면 둘 다 지쳐서-"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했다. 안 그랬다간 콜린스가 저를 더 질려할 지도 모르니까. 이대로는 못 헤어진다고 무릎을 꿇고서라도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가며 짧은 대답에도 자신의 떨림이 묻어나올까 긴장을 했다. 콜린스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였다. 책을 덮어 탁자 위에 올려놓은 파리어는 등을 돌린채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 조용하던 콜린스가 등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 때까지 파리어의 온 신경은 등 뒤를 향했다.
근 한달간 헤질대로 헤졌던 가슴인데도 아픔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결국 파리어는 밤새 뒤척이다 해도 뜨지않은 새벽녘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운 물에 몸을 적시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대충 말린채로 새로 꺼낸 티셔츠와 아이보리빛의 두툼한 스웨터 껴입은 파리어는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딱히 배고픈 느낌은 없었지만 오전에 있을 연습을 위해서는 아침식사는 필수였다.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울렁거리던 속은 배식차례가 다가올 수록 심해졌다. 욱...! 급기야는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토기에 파리어는 배식대를 코 앞에 두고 발을 돌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멀건 위액만 게워내고 비틀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온 파리어는 아침식사를 하러가는 리더와 마주쳤다. 몇 년을 함께한 탓인지 그는 파리어의 상태를 곧바로 알아챘고, 그를 이끌어 의무실에 밀어넣었다. 제대로 검사받고 오전 비행은 빠지라고,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어색한 자세로 군의관의 맞은 편에 앉은 파리어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그의 노력에 점차 말문을 텄다. 음식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고 요즘따라 힘이 없거나 잠이 많아졌다는 등 증상들을 털어놨다. 파리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요상해지던 군의관은 서랍 깊숙한 곳을 뒤져 임테기를 꺼내들었다. 당황한 파리어의 시선이 군의관의 얼굴을 향했다.
"지금 대위님의 증상으로 봐선..."
테스트 결과는 양성이었다. 설명을 듣는 파리어의 얼굴이 점점 흐려졌다. 주의해야할 점을 말해주며 이것저것 챙겨주던 군의관이 마침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파트너의 행방을 물었을 때 파리어는 순간 콜린스의 이름을 떠올렸으나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군의관은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의무실을 나가는 파리어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콜린스와 나의 아이. 마음 속으로 몇백번을 되뇌었다. 콜린스에겐 말하지 않을거야, 아니 못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지도. 이미 헤어진 상태였고 알려봐야 그에게 짐만 지어주는 것 밖에 더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 대신 저 혼자라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한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 파리어는 가장 먼저 리더에게 가서 임신사실을 알리고 빠른 시일 내에 군 생활을 정리할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음식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던 입덧도 익숙해지진 않지만 어느정도 식사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을때쯤 휴가를 내서 산부인과에 들렀고, 병원 가까이의 집을 구했다. 두번째로 휴가를 나온 날엔 집 전체를 말끔히 정리하고 가구를 들여왔다. 마지막으로 아기 침대를 옮겨놓던 파리어는 조그만 침대를 부여잡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공군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의 파리어인지라 그가 빠지는게 전력에 손실이 될게 뻔했지만 리더는 파리어의 뜻에 따라 최대한 도움이 되어주고자했다. 윗선을 설득해서 2주 후에 있을 큰 작전만 제대로 마치고 마음대로 하라는 말도 받아냈다. 그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하늘에서의 콜린스와 파리어는, 그리고 자신의 팀은 여전히 환상의 조합이었고, 이대로 작전만 무사히 끝내면 파리어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새로운 파일럿을 구해야 할 제 팀이 걱정이 안 되는건 아니었지만 파리어는 저에게 마음으로 키운 자식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으니 그저 그와 그의 아이가 건강하길 바랄뿐이었다.
헤어진 날을 기점으로 파리어는 연습 비행 시간에 종종 늦곤 했고, 군 생활 내내 쓰지 않던 휴가를 두번이나 내서 리더와 콜린스 단 둘이 비행에 나가는 일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그 날 아침 이후로 다시 늦잠을 자는건 물론 낮 시간엔 휴게실이나 군 내 벤치 등등에서 졸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아무리 헤어진 사이라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윙메이트이자 한 팀이었고 제가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게 분명하니 콜린스도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직접 물어보진 못하고 고민만 해보다 리더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봤지만 그는 개인사정이며 그렇게 궁금하면 본인에게 직접 물으라며 차갑게 일갈했다.
잭하디 로우든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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