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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1앱에서 작성
ㅇㅇ
24-03-26 03:29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보통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마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경우는 대부분 기이한 사건이 꼬리표로 붙어있기 마련이다. 우리 마을도 그랬다. 마을에는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공터가 있었다. 구석에 농구대가 하나 있을 뿐인 아스팔트 공터 구석에는 작은 샛길이 있는데 그 샛길을 지나면 통행량이 적은 도로와 건너편 숲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나왔다. 숲이 있는 땅 전체가 사유지였기 때문에 철조망이 쳐져있어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오직 그 대문뿐이었다. 그 대문을 지나 숲 사이에 나있는 길은 15분 정도 걸어가면 탁 트인 평지가 나오는데 거기에 커다란 2층집 한 채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대저택이 바로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다.
벌써 몇백 년은 된 사건인데 옛날에 그 저택에는 컬트 집단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납치해서 자신들의 의식에 이용했고 숲속에서는 밤마다 끔찍한 괴성이 들렸다. 희생자가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 명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느날을 경계로 숲에서 들리던 괴성이 멎고 마을에 필수품을 사러 오던 이들의 발길도 끊겼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찾아가봤다. 그리고 닫힌 문을 연 그들이 본 것은 집 안을 여기저기에 죽어있는 컬트 집단의 일원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들을 죽인 것이 사람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참상이었다고 한다. 시신을 수습하며 안을 살펴봤는데 그 집에는 오직 한 곳, 열리지 않는 문이 있었다. 당시 건축사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이었다고 한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집 안 분위기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억세고 단단한 철문. 어딘가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그 문을 굳이 열어보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치르던 의식이 괴물를 불러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괴물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 결과 모두 죽임을 당한 거라고. 철문 앞에 시체들이 있었던 것을 보아 죽기 전에 그 괴물을 지하실에 가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컬트, 살인, 괴물. 그야말로 사람들이 열광할만한 이야기였다. 그 사건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고 지금도 특집 방송이 한번씩 편성되고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에 불을 지필 것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 마을에 살면 지겹도록 듣는 얘기인지라 오히려 시큰둥했다. 위에서 말했듯 애초에 사유지였기 때문에 쉽게 들어갈 수도 없었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그 집보다는 공터에서 폭죽놀이를 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날을 참 이상했다. 늘 열려있던 잡화점이 닫혀서 폭죽을 사지 못했고, 공터에 하나 쯤은 굴러다니던 공조차 없어서 우리는 농구대에 모여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를 던지기나 하며, 누가 집에 가자는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던질 돌멩이도 엏어졌을 무렵 내가 총대를 매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입을 떼는 것보다 먼저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 친구가 먼저 말하려는 것 같아 나는 흙먼지가 묻은 손을 털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거기 가보자.
아이들 머릿속에는 모두 같은 생각이 스쳤을 거다. 우리 동네에서 거기라고 하면 거기밖에 없으니까. 괴물이 산다는 그 2층집. 무료했던 아이들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좋은 생각이라고, 가보자며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까지 농구대에 앉아있던 것은 나 하나 뿐이었다. 친구들이 날 둘러싸고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했다. 그 애들을 올려다보며 가기 싫다는 말을 할지 말지 망설였다. 사실 나는 그 2층집이 무서웠다. 친척 언니 오빠들이 날 놀린답시고 그 집에 갔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는 둥 숲을 서성이다가 어린 아이가 보이면 잡아간다는 둥 그런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에게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같이 노는 애들 중 유일하게 여자애였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이 갈수록 나를 다르게 대하는데 약한 모습까지 보이기는 싫었다. 언제나 위험한 일을 먼저 저지르는 것은 나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좁은 샛길을 일렬로 걸으며, 나는 몇 번씩 뒤를 돌아 집으로 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줄의 가운데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친구들이 가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발을 헛디디는 것을 어둠 탓으로 돌리며 괜히 큰소리로 성을 냈던 것 같다. 샛길이 끝나니 도로가 나왔고 우리는 숲의 유일한 입구인 대문 앞에 도착했다. 녹이 슬어 검붉게 뒤덮인 대문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친구들이 문에 다가가는 동안 나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대문을 살피던 아이들이 시험삼아 문을 흔들어봤지만 끼익 하고 귀가 아픈 소리만 날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들어갈 방법이 없으면 친구들도 포기하고 집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은 것도 잠시,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창살 사이로 발을 끼우며 대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겁없는 친구들을 원망하며 나또한 하는 수 없이 녹슨 창살을 꽉 쥐었다. 대문 꼭대기에 올라가니 멀리 있는 2층집 윗부분이 언뜻 보였다. 당연하지만 집은 어두웠다. 그래도 오늘은 구름이 없는 밤이어서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시야 확보가 되었다. 커다란 달 아래에 있는 대저택은 보기만 해도 몸이 위축됐다. 내가 집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니 밑에서 친구들이 빨리 뛰어내리라고 재촉을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알겠다고 말하고 폴짝 뛰어내렸는데 신기하게도 문 너머에 발이 닿은 순간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얼른 그 2층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꼭 그 집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문을 넘은 그 순간 이미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뱃속에서 근질거리는 충동을 거부하지 않고 나는 미친듯이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내 뒤를 쫓아왔다. 우리는 하얀 달빛 아래 숲길을 뛰어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폭죽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숲에서는 스산한 바람과 풀냄새가 났다. 친구는 벌레가 붙는다며 자꾸 팔뚝을 손으로 내리쳤다. 머지 않아 숲길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 그 지점을 통과하는지 경주라도 하듯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다같이 그곳을 지나자 드넓은 흙바닥을 마당으로 둔 2층집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집 주변에는 울타리나 대문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그저 그 집 하나만이 우뚝 서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큰 집은 태어나서 처음 봤을 정도로 대저택이긴 했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색은 없었다. 폐허라는 소문과 달리 외관이 낡기는 했지만 깨진 창문이나 낙서도 없었다. 친구 둘은 닫힌 창문으로 뛰어가 얼굴을 바짝 붙여 안을 살폈다. 나머지 친구들과 나는 현관문 쪽으로 가봤다. 문고리를 잡은 것은 나였다. 친구들과 눈빛을 주고받은 후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보니 꼭 누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신이 나서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창문 쪽에 있는 애들에게 문이 열려있다고 알려줬다. 바로 달려온 두 친구도 집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해서 방금까지만 해도 누가 살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전기는 끊겼는지 스위치를 올려봐도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달빛이 들어오도록 현관문은 열어두고 우리는 각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뭐 찾으면 소리질러. 누군가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은 각자 흩어졌다.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 안을 뒤져보는 애들도 있었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애들도 있었다. 어느새 현관에는 나 혼자 남았다.
나는 현관에서 똑바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 복도는 양쪽이 벽으로 막혀있어서 아주 어두웠지만 라이터 불빛 덕에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른 통로나 방에는 눈길조차 주지않고 나는 마치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복도를 따라 걷고 또 걷고 있으니 이윽고 복도 끝에 어렴풋하게 문이 보였다. 그 문을 본 순간 나는 기묘한 고양감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온몸의 세포가 그 문을 열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철로 된 긴 손잡이를 잡으니 뒤통수가 찌릿거렸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을 열었다. 열린 문 너머에는 새까만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라이터로 아래를 비추어보니 낡은 계단이 보였다. 지하실로 가는 계단이었다. 심장이 얼마나 쿵쿵 뛰는지 귀가 아릴 지경이었다. 혼자 내려가면 위험하다거나 친구들을 먼저 불러야 한다거나 그런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라이터로 발 주변을 비추며 한칸씩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좁고 가팔라서 신중하게 내려가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일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내려가던 나는 한 칸을 지나치고 발을 내딛는 바람이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엉덩이와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나는 불꺼진 라이터를 꽉 쥔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그렇게 한참 웅크리고 있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다시 라이터를 켰을 때, 그것이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머리가 상황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그것은 숨을 불어 라이터 불을 꺼뜨렸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의 녹안만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것은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몸에 두르고 있던 즐거움과 흥분은 꺼진 불과 함께 사라졌고 두려움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공포에 질린 몸은 뻣뻣하게 굳어서 라이터를 들고 있는 팔을 거둘 수도, 고개를 돌려 그것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제야 친구들이 생각나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나는 숨을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됐든, 나에게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라이터를 쥐고 있는 손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래로 내려가 내 손목을 감싸쥐었다. 손이었다. 그것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내 피부를 누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나에게 꽂혀있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것이 움직이자 발작하듯 몸이 떨렸다. 이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내 귀에 그것의 숨결이 닿았다. 이윽고 그것은 내 손목을 꽉 쥐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내 기억은 거기서 한번 끊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울면서 혼자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대문을 타넘어 그 숲에서 벗어난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집까지 도망쳤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냐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허겁지겁 이불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뛰어오느라 흘린 땀 때문에 팔다리가 끈적거렸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눈을 꾹 감고 내일로 도망치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면 다 잊어버렸을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기절하듯 잠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손목에 생긴 시퍼런 멍자국을 보자마자 나는 곧장 화장실에 가서 속을 게워냈다. 머릿속에 그 섬뜩한 눈동자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집에는 정말 괴물이 살고 있었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몰려와 어제 왜 혼자 집에 갔냐며 내게 따졌다. 나는 손목을 감추며 갑자기 배가 아파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넌지시 거기서 뭐 본 게 있냐고 물어봤지만 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철문을 찾긴 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서 안은 구경도 못했다고. 이상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철문은 분명 열려 있었고 지하실에는 괴물이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손목이 욱신거리는데 왜 나말고 다른 아이들은 괴물을 보지 못한 걸까. 혀끝을 맴도는 말을 꾹 참고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웃어보였다. 수업을 들으며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잠깐 이상해진 거라고. 나는 그 문을 연 적도, 밑으로 내려간 적도 없다고. 다른 애들도 아무것도 못 봤다잖아. 그러니 나도 못 본 거야. 하루에도 몇번씩 그렇게 되뇌었지만 손목에 남은 멍자국까지는 속일 수 없었다. 멍은 한달이 지나서야 서서히 옅어졌고 두 달이 지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무렵이 되어 드디어 나도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있게 됐다. 한동안은 그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이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혔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더는 그런 꿈을 꾸지 않게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도시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됐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날, 친구들이 역에서 나를 배웅해줬다. 도시 애들이 괴롭히면 전화하라고, 때려주러 가겠다는 말에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손을 흔드는 친구들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매일밤 폭죽놀이를 하던, 그날 함께 대문을 넘었던 그 친구들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친구들에게 나 역시 눈물을 참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멀리 우리 동네가 보이고, 어릴 적 놀던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편에 숲에 둘러싸인 2층집이 보였는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집 발코니에 누가 서있는 것을 본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새까맣게 잊고있던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괴물의 눈동자와 귀에 닿던 숨결까지도. 나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인 채 호흡에 집중했다. 그리고 패닉을 일으키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렸다. 그 대저택이 손바닥보다 작게 보일 만큼 거리가 멀었으니 설령 누가 있었다고 해도 내 눈에 보일 리가 없어. 그 사실을 이해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처음 고향을 떠나게 되어 긴장한 나머지 헛것을 본 게 분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끄러움이 몰려와 나는 멋쩍게 몸을 일으키고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창밖에는 어느새 낯선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고향 밖으로 나왔구나. 도시를 향한 기대감에 마음이 들떠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처음으로 혼자 사는 생활은 어떨지, 대학교는 과연 어떨지 생각하며 나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또 전처럼 다 잊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름이 뭐야?"
괴물과 똑같은 눈을 가진 그 남자애와 만나기 전까지는.
빌슼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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