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본문 영역
테잨너붕붕 뻔한 롬콤 끝나더앱에서 작성
ㅇㅇ
24-03-28 18:38
테일러는 오늘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전여자친구 청첩모임을 가던 길만 해도 제 인생에 다시는 사랑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첩모임을 가는 길만 해도 분명 그들에게 물을 뿌려주거나, 우아하게 꽃다발을 건네며 촌철살인하는 발언으로 큰 상처를 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허니가 말한 '굳이?'에 제 마음의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마음을 다해 미워할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 함께 불운을 빌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타고나길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도 좋았고, 항상 유세 떨지 않고 겸손하다는 것도 좋았다. 결혼식 아침 내내 긴장도 됐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그렇게 좋은 사람과 평생 함께할 거라고 사람들 앞에서 약속하는 날이었다는 거다. 허니와 떨어져 분리불안 증세라도 있는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도 생각은 꽤나 많았다.
긴장되는 수많은 요인들 중에는 뭐 I do를 I did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라던가.. 입장하다 넘어지면 어떡하지라던가, 수많은 게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아직 허니의 웨딩드레스 차림을 한번도 보지 못해서, SNS에 올라온 신랑들처럼 울음이 터질까봐 걱정이었다. 최선을 다해 멋있기만 하고 싶은 날인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손님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이 입장해서 허니를 기다려야 했다.
"신부 입장!"
"세상에..."
단정하게 올림머리를 한 허니를 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건 더더욱 처음이라 테일러는 넋을 잃고 입장하는 허니를 바라봤다. 저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게 벅차올라서 눈물이 왈칵 고였다. 반면 아까 친구가 장난처럼 챙겨준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눈물을 닦는 테일러를 보고 허니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 아름다우시네요."
"감사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바에요."
긴장하고 있는 테일러를 달래려고 너스레를 떨며 손을 내미는 허니의 손을 맞잡고서야 조금 누그러졌다. 주례 도중에 테일러의 손을 꽉 잡더니 제게 고개를 숙이게 해 주례가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더니 찡끗하고 윙크하는 걸 보고는 너무 행복해져서 이대로 집에 가버리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미스터 비-페레즈, 결혼 축하드려요."
"미세스 비-페레즈도 결혼 축하드립니다."
성혼선언까지 마치고, 행진하는 동안 허니가 던진 농담에 테일러는 그제야 저희 둘이 정말 결혼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허니가 그토록 준비하면서 고통스러워했던 웨딩댄스도 추고, 사람들 앞에서 입을 맞추며 하루 온종일 축하를 받는 동안 테일러는 한 쪽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있지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금발머리를 본 것 같았다.
잘못 봤겠지, 싶었지만 너무 얼굴을 정면으로 봐버렸다. 다행스러운 건 허니는 상대를 못 본 것 같았다. 목을 축이며 테일러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허니를 데리러 갔을 때, 회사 입구에서 퍽 아련하게 허니를 바라보는 눈길에 찝찝해서 얼굴을 기억해뒀던 참이었다. 허니 성격상 끝난 사이에 청첩장을 보냈을 리가 없고... 아무래도 지사여도 같은 회사다 보니, 회사 인트라넷으로 청첩장을 봤을 거다.
그렇다고 황금같은 주말에 비행기로 여섯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오다니, 미련이 진짜 엄청났나 보다. 표정관리를 하긴 하지만 누가 봐도 사연 있는 얼굴로 한쪽 구석에 서서 가는 전남자친구라니. 저가 신랑이 아니었다면 안쓰러워 했을 법하다. 그래도 쫓아가서 겁을 주며 내쫓기 전에 저가 떠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행복한 일들만 가득해야 하니까. 제 손을 잡아오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허니에게 그저 웃어보였을 뿐이다.
-
"압빠아아아아!"
"어이구, 우리 공주 왔어. 뛰지 말고 살살, 넘어져."
재빠르게 뛰어와 날아오듯 안기는 첫째는 테일러를 똑닮은 딸이었다. 이목구비가 선명했지만, 웃는 모습이라던가 이런 건 허니를 닮아 부드럽고 따뜻했다. 저가 데리러 올 때마다 저렇게 신나서 달려오는 게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달려오는 걸 꼭 끌어안는 것도 모자라 온 얼굴에 입을 맞췄다. 둘의 염원을 담아 둘째는 허니를 닮은 아들이었다. 다만 발이 벌써부터 크고 팔다리가 길쭉해서 그것만큼은 테일러를 꼭 닮아있었다.
둘다 테일러를 닮았는지 속눈썹이 자기주장이 강해서 종종 나란히 잠이 들면 허니는 그 속눈썹을 만져보다가, 이마에 입을 맞췄다. 테일러는 두 아이의 옆에서 까무룩 잠든 허니를 흐뭇하게 보며 세 사람의 사진을 찍고서는, 네 사람이 다섯사람이 되고, 다섯 사람이 다시 두 사람이 될 때까지도 허니를 안아다가 안방에 옮기곤 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특별한 사랑이었다.
끝! 더 길어지는 것보단 둘이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끝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여기서 마무리하조 그동안 노잼글 읽어줘서 고맙당
외전 있음!
테잨너붕붕
#테잨뻔한롬콤
추천 비추천
5
0
댓글 영역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