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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댄 사내연애 끝나면앱에서 작성
ㅇㅇ
24-03-25 03:36
1.
댄은 지금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약간의 거북목, 집어넣고.
비뚤어진 안경, 수평 맞추고.
아 참, 아침에 화장실 갔다가 바지 자크 제대로 잠갔나?
출근 시간대 인파로 꽉찼지만 정적이 흐르는 사내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부스럭대는 댄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세상에서 튀는게 제일 싫은 댄이지만 아침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는 유난히 산만하다.
그치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댄의 사무실은 짝수 층이라, 짝수 층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인사팀 사람들이 우르르 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에게 <칠칠치 못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찰리는 지금 인사팀 한무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재빠르게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아침부터 스팀다리미질한 셔츠, 완벽하고.
스프레이로 예쁘게 세팅한 머리, 완벽하고.
아 참, 상사에게 아침마다 대령해야하는 커피 제대로 챙겼지?
매일같이 야근 후 새벽출근이 일상인 인사팀이지만 인사팀 중에서 혼자 아침부터 쫙 빼입는 찰리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세상에서 아침잠이 제일 좋은 찰리지만, 아침 출근 준비는 항상 전쟁영화 한 편을 찍고 오는 정도다.
그치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인사팀과 아침마다 커피를 상납하러 가야하는 상사의 사무실은 짝수층이라.
짝수 층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 개발팀 사람들이 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에게 <완벽하지 않은모습>은 보여주는게 성미에 안맞아서.
띵, 엘리베이터가 맑은 소리를 내며 인사팀 층에서 열린다.
동시에 엘리베이터 안에 타 있는 댄은 눈을 내리깐다.
찰리는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며 일부러 반짝반짝한 미소와 함께 아무에게나 눈인사한다.
조금 덜커덩거리며 몇 개의 구두가 더 타고 나면 엘리베이터는 육중한 무게를 움직이며 개발팀 층에 도착한다.
우르르, 개발팀이 모두 내릴때 이번에는 반대로 찰리가 눈을 내리깐다. 댄은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며 일부러 제일 먼저 내린다.
개발팀 한무더기가 내려 가벼워진 엘리베이터는 몇 층을 더 올라간 뒤 인사팀 사람들을 회사의 임원들이 근무하는 층에 내려준다.
그러면 오늘 하루도 불편한 출근길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찰리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엘리베이터 만남을 앞으로도, 영원히, 둘 중 하나가 퇴사하기 전까지 반복해야한다는 것에 무한한 피로감을 느끼며, 어느새 손에 들려진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해진것도 모른채 상사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2.
한 때는 그들에게 이 공포의 출근길도 천국행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
찰리와 댄은 용케도 그 어렵다는 사내 비밀연애를 했다.
그들은 출근길에 인파로 꽉찬 엘리베이터에서 실수인척 슬그머니 손등을 비비곤 했다. 댄은 그러면 큭, 하고 웃으며 너드답게 안경의 코받침을 올렸고 찰리는 동그란 댄의 안경을 보며 오늘 하루도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그치만 그것도 한 달 전에 다 끝나버렸다.
"댄이 항상 그렇게 여지를 주는게 싫다고요! 자각 못하겠지만 그거 그 놈이 플러팅한거라고요! 칠칠치 못하다고!"
"찰리씨는 무 자르듯 인간관계가 카테고리마다 완벽해서 좋겠어요. 근데 그거 사이코패스예요."
활화산처럼 분노를 내뿜는 찰리와 얼음처럼 차가운 말을 던진 댄은 그 길로 서로 끝을 냈다.
뭐 이렇다 할 작별인사도 없이 둘은 2년 하고도 8개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연애경험을 끝냈다.
헤어지고나서 댄은 매일같이 야근을 했다. 규모가 있는 회사라 일거리는 넘쳤다. 댄은 찰리를 마주칠 수 도 있는 회사가 싫었지만 워커 홀릭 기질이 강했던 만큼 일로 도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찰리가 첫 연애상대였던 댄에게 이별은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치만 워낙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성격이라서 같은 팀 직원 중 아무도 댄의 우울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헤어지고나서 찰리는 매일같이 칼퇴를 했다. 규모가 있는 회사라 일거리를 떠맡길 인턴은 넘쳤다. 찰리는 댄을 마주칠 수 도 있는 회사가 싫어서 도심으로 나가 매일같이 시끄러운 술집으로 도피했다. 연애 경험은 많았지만 댄처럼 길게 장기연애를 해본 상대는 처음이라 찰리에게도 이번 이별은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치만 워낙 포커페이스를 잘하는 성격이라서 같은 팀 직원 중 아무도 찰리의 우울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연애를 했다는 점에서 사내 비밀 연애는 성공적이었고, 또 결혼이 아니라 이별로 온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사내 비밀 연애는 실패했다.
아무리 아픈 상처도 시간이 약이라던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한 달이 지나갔다. 둘은 여전히 같은 회사를 다녔고, 아침마다 이렇게 얼굴을 볼 수 밖에 없었으며, 아직은 서로 이별에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그래도 둘은 어른답게 서로를 존중했다. 찰리는 퇴근 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댄에게 당장 전화를 걸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으나 대신에 소파에 엎드려 엉엉 우는걸로 마음을 달랬고, 댄은 퇴근 후 왠지 자기를 더듬던 손길이 없어졌다는 걸 상기하며 찰리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으나 대신에 컴퓨터를 키고 밀린 프로그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아래(?)를 달랬다.
3.
살얼음판 위의 평화는 그렇게 계속되는듯 했다. 어느 순간 찰리는 이 슬픔이 언젠가는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했다. 다음에 엘리베이터에서 댄을 볼때는, 미련 뚝뚝떨어지는 전남자친구 포지션은 빼고, 그냥 회사 동료로서 커피 한 잔 쥐어주어야 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시 찰리는 유쾌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 여느때처럼 불편한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 속에서 같이 타고 있던 개발자놈이 댄에게 한 얘기만 아니었다면.
"댄, 모쏠이라며. 소개팅 하지 그래?"
그 날 찰리는 자기가 제일 앞에 서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포커페이스가 특기인 찰리의 사정없이 구겨지는 얼굴을 누군가가 봤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행맨밥 찰리댄 파월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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