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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루 ㅇㅇ화 같은 약초가 있는데 부작용도 있는 게 보고싶다 2부 24앱에서 작성
ㅇㅇ
24-03-25 23:34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로 시작했던 거 2부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차가운 손을 꽉 말아쥔 채, 이연화는 애써 단정한 태도로 하효혜를 맞았다.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와 미안하다 건네는 하효혜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져 있었다. 이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를 찾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방소보는...."
"아, 그 녀석은 기관에 가둬놨어요."
하효혜가 한 손을 들며 대꾸했다. 이연화는 이마를 짚고 싶은 심정으로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박동이 제멋대로 빨라졌다. 외동아들을 기관에 가뒀다면, 하효혜는 방다병의 말에 단단히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하자로 가득하다 못해 넘치는 상대와 각인하겠다 고집을 부리는 상황이었으니, 물론 심기가 상할 터였다. 뭐라고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할까? 바닥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내적 진땀을 철철 흘리며 머리를 굴리는 이연화를 바라보다, 하효혜는 곧 한 손을 내밀어 이연화의 팔을 잡았다. 이연화가 흠칫했다.
"선생, 일단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하 당주,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어 말했다. 두 쌍의 눈이 잠깐 동그래졌다. 하 당주가 왜 자신에게 사죄한다는 걸까? 절대 안 된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건가? 어색하게 얼어붙은 이연화를 향해, 하효혜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소보와 선생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던 줄 전혀 몰랐지 뭡니까. 아무리 아픈 선생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소보가 했던 행동은 적절하지 않았어요. 음인과 별다른 경험도 없던 녀석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는지...게다가 최근에는, 여현에서 흉악한 범죄자에게 당한 소보를 구하기 위해 애쓰셨다지요. 방씨 집안의 일로 선생께 난데없는 일을 겪게 하여 참 면목이 없습니다."
이연화는 그 말을 천천히 이해했다. 하효혜는 방다병과 자신의 사이에 있던 일을 사고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사 자체만 두고 보면, 늘 외부의 압력에 등을 떠밀려 급히 치러버린 형국이었다. 이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당시에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방 공자의 결정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관 협의 역시 그렇게 말했지요. 오히려 제가 무모하게 군 탓으로, 애꿎은 방소보가 피해를 본 셈입니다. 여현에서의 일도, 어떻게든 거부하려 애쓰는 방소보를 제가 밀어붙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고요. 당주께서 사죄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효혜는 그리 설득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입을 다물고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연화는 목에 칼날이 들어온 기분으로 허벅지를 꾹꾹 움켜쥐었다. 방다병은 대체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한 걸까? 궁금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듣더라도 과히 흔들리지 않도록 심적 방어벽을 세우던 이연화의 앞에서, 하효혜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평소의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성품과 달리,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어조였다.
"선생, 소보에게 어떤 상황인지 전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뭘 바라는지도요."
"정확히 어떤 말을 나누셨는지는 모르나, 방소보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아 진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지는 않았겠지요."
이연화가 쓰다 못해 경직된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천기당주는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보는 늘 거짓말에 별 재주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런 일은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을 듣고 판단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해서, 선생에게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이리 깊은 밤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하 당주."
"혹시, 내가 거절해주기를 바라서 소보를 보내셨습니까?"
하효혜가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이연화의 눈이 둥그레졌다. "예?" 답지 않게 멍청한 소리를 흘리자, 당주는 한숨과 함께 눈을 흘겨 가상의 아들을 째려보았다.
"물론 소보가 선량한 아이라는 사실은 압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의지가 굳은 녀석인지도 알아요. 그리고 선생은 소보를 아끼시지요. 웬만하면 그 아이가 상처받기 않기를 바라실 테고요. 혹시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어려워, 일부러 내게 허락을 받고 오라 이야기하신 건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 된다 하겠습니다."
하효혜가 이연화의 팔을 잡은 채 건넸다. 진심 어린 배려와 염려가 배인 말이었다. 이연화는 잠깐 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하효혜의 얼굴에, 외아들의 앞날을 막아버린 원수를 원망하는 빛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린 채, 이연화는 숨결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짧게 뱉었다. 가슴 한편이 묘하게 일렁였다. 천기산장에서는 늘 분에 넘치는 살핌을 받아, 가끔씩은 정말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다. 이연화가 시선을 살짝 내리깔며 한쪽 입매를 올려 웃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뭣보다, 그럴 심산이었다면 제가 매몰차게 얘기했을 겁니다. 이미 방다병을 두고 도망친 전적이 몇 번인데요. 당주께 그런 일을 전가하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 아이가 그래도 상대의 마음을 전혀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행동하진 않았다는 뜻이니. 내가 선생과 단둘이 얘기해선 안 된다고 하도 떼를 쓰기에, 혹시나 싶었지 뭡니까. 해서 기관에 가둬버리고 혼자 와 보았지요."
하효혜가 빙긋 웃었다. 이연화는 차마 따라 웃지 못하고 차가운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하효혜가 문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럼, 선생은...선생도 진정 소보와 각인을 맺길 원하시는 겁니까?"
예상 내의 질문이었으나, 듣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잔뜩 기대하고 열망하던 방다병을 향해 각인을 유지하자 건네는 일도 혀가 굳어지도록 어려웠지만, 그 어머니를 향해 똑같은 말을 건네는 일은 그보다 십여 배 정도 더 어려웠다. 이연화는 드물게도,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찻잔으로 시선을 옮겼다. 잔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손끝이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신세를 진 사람이 참을성 있게 답을 기다리는 참이었기에, 이연화는 결국 억지로 입을 열어 다소 두서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당주의 눈에 절대 안 될 일이라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연히 말이 안 되지요. 그 녀석과 제 나이도 그렇고, 아시다시피 제가 각인 상대로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과히 시끄러운 명성이나 가졌을 뿐, 눈여겨볼 집안이랄 것도 없고요. 또 저는...저는 아무리 몸이 바뀌었다 해도 후사를 볼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 녀석은 하 당주의 외아들인데, 어찌 그런 사람과 연을 맺겠습니까?"
말을 계속할수록 등이며 뒷목이 홧홧하게 뜨거워졌다. 모두 알고 있었는데도, 하효혜의 앞에서 그 당연한 사실들을 나열하자니 스스로가 정말 무책임하고 초라하며 비양심적인 사람이 된 듯했다. 깊다 못해 탁자가 꺼질 듯한 한숨을 푹 내쉬며, 이연화는 결국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극도로 부끄러운 동시에 우울해졌다. 이연화가 벌게진 얼굴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어쩐지 미안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진실로 면목이 없는 사람은 저입니다."
하효혜는 금방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연화의 팔을 잡은 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이연화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저 손으로 폭골주를 날리는 건 아니겠지? 이연화가 비이성적인 전개를 떠올리며 몸에 힘을 주었다. 길어지는 침묵이 불안하여 슬쩍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자, 하효혜의 놀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이연화를 바라보며, 하효혜가 천천히 말했다.
"선생...정말 우리 소보를 마음에 둔 거로군요."
이연화는 그만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지막으로 민망함에 쩔쩔맸던 것이 언제 적 일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무료 대사를 대할 때보다도 훨씬 까다로웠다. 진심을 적당히 감추며 거짓말을 할 수도, 천연덕스럽게 딴 소리를 늘어놓아 둘러댈 수도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진실만을 건네야 하는 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잠시 찻물을 바라보며 회상하고 갈등하던 이연화는, 이내 시선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하 당주. 사형의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저는 사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느리게 건네자, 하효혜가 작게 숨을 삼켰다. 이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엷게 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기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피로하고 막막하여, 흐르는 물에 섞여 적당히 사라져도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내버려 두었다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테고요. 그런 사람을 기어코 삶으로 다시 끌어낸 이가 방다병입니다."
방다병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연화는 자신이 결코 지금까지 생존할 수 없었으리라 확신했다. 단지 방다병이 화봉초를 찾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힘을 다해 영약을 찾아, 어떻게든 살아달라 눈물과 함께 간청하던 그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결국 그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이연화는 생에 대한 미련이 희박했음에도 방다병의 노력에 응했다. 그 결과가 복잡하고 시끄러워졌다 하여, 방다병을 탓할 마음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연화의 정체를 모를 때부터, 방다병은 이연화 본인보다 이연화의 안위에 필사적이었다.
"더는 마음에 아무도 품지 않겠다 생각했는데...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들어온 터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연화가 낮게 읊조렸다. 스스로의 귀에도 변변찮은 변명처럼 들렸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효혜는 이연화가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눈동자와 표정만으로는 속내를 읽기가 어려웠다. 이번에야말로 호통이 떨어질까 싶어 다시 긴장하는 이연화를 향해, 하효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입가로 아주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잘 됐네요."
이연화가 퍼뜩 눈을 깜박였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어안이벙벙하여 바라보자, 하효혜는 묘하게 후련한 웃음을 탁 뱉으며 이연화의 팔을 토닥이듯이 두드렸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동경하던 사람과 덜컥 각인을 맺겠다니, 바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무래도 소보가 혼자만의 착각이나 소망으로 속을 끓이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선생의 말을 들으니 소보가 일방적으로 마음을 다칠 일은 없을 듯하네요. 어미로서 다행스럽게 여길 만한 일이지요."
너무 놀란 나머지, 이연화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효혜의 얼굴에서 예의를 가장한 분노나 근심의 빛을 찾으려 했지만, 천기당주는 사려 깊고 진중해 보일 뿐 딱히 폭발할 사람처럼 비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연화가 불신에 사로잡혀 미간을 좁혔다. 하효혜가 살짝 찌푸린 듯한 웃음을 짓고는 짓궂게 물었다.
"왜, 내가 쌍수 들고 반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까?"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까?"
"바로 허락하진 않을 거예요. 아직 확인해야 할 부분들도 있고, 소보의 부친과 의논해야 할 부분들도 있으니 그 전까지는 함부로 확답할 수 없지요. 뭣보다, 소보 그 녀석이 괘씸하단 말이지요. 내가 선생을 잘 챙기라, 네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르고 또 일렀는데...그렇게 큰 일을 쳐놓고는, 이 어미에게 지금껏 일언반구도 없었다니요. 속 좀 끓이게 두렵니다."
하효혜가 짐짓 심술스럽게 맺으며 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이연화는 그 가벼운 분위기에 조금도 편승하지 못한 채 하효혜를 빤히 응시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에 머리가 다 울릴 지경이었다. 피식 웃은 하효혜가 한결 진지한 투로 이었다.
"어차피 그 녀석의 태도를 보니, 주위에서 뭐라 해도 들어먹지 않겠던걸요. 부마는 싫다, 강호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에도 딱 그런 태도였지요. 적어도 그때는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부를 법한 구석이 있어 오래도록 반대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었어요. 소보도 많은 일을 거치면서 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졌더군요. 뭐, 마지막까지 나를 향해 '이연화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하던 꼴은 별로 어른스럽지 않았지만."
하효혜가 코웃음을 치며 맺은 말에, 이연화는 그만 다시 이마를 짚었다. 잠시 소리내어 웃던 천기당주가 한숨과 함께 이었다.
"지금에야 말이지만, 나는 소보가 평생 짝이 없이 혼자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 녀석이 워낙 선생만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고...강호를 누비며 바삐 명성을 쌓다 보면, 좋은 세월을 훌쩍 보내는 일이야 예사지 않습니까. 저 녀석이 딱히 혼사나 각인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선생과 지기로만 여생을 보내지 않으려나 했지요. 그러던 차에 이렇게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민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더군요. 제 천생연분을 찾는 일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복이지요."
"하 당주, 저는...."
"세간이 선생을 영웅이라 칭하는 것과 별개로, 선생이 왜 걱정하시는지는 잘 압니다. 선생이 결코 쉽게 소보를 받아주셨으리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항상 이유를 따라가지 않는데, 그 인연을 어찌 함부로 평가하고 속단하여 잘라낼 수 있겠어요? 이런 일은 부모가 아니라, 하늘이 강요한다 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나도 우리 집 어르신과 그리 순탄하게만 혼인하지는 않았으니 잘 알아요."
농담처럼 덧붙인 하효혜가 한쪽 눈썹을 까딱했다. 이연화는 여전히 초현실적인 기분에 휩싸여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조차 너무나 몰염치하게 느껴져,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연화는 시선을 깊이 숙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효혜가 빙긋 웃었다.
"아무 말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소보에게는 내가 이리 얘기했다고 알리지 마세요. 그 녀석은 내가 속을 좀 더 태워야겠으니.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히 확인할 것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듣기로는, 선생과 각인을 맺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지요."
아, 그 문제. 이연화가 슬그머니 명치에 손을 얹었다. 그 또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연화는 다시금 상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싶은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했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선생을 잘 알고 믿지만, 금원맹주는 잘 알지 못해요. 역도들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을 주었고, 선생과 나름의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아마도 구제불능의 악인은 아니겠지요. 그랬다면 선생이 절대 각인에 대해 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연화가 가볍게 긍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비성이 타인의 고통을 즐기거나, 기분만으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성정이라는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제불능의 악인이 아니라 하여, 정이 많은 협객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적비성은 최고를 지향하는 무인이었고, 비겁하거나 하찮은 자들에게 아주 거침없는 손속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이연화의 머릿속을 따라가듯이, 하효혜가 말했다.
"소보 역시 비슷하게 말하더군요. 타고난 천성이 나쁘지 않으며, 선생을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진실하다고요. 그렇더라도, 어쨌든 적비성이 오래도록 무자비한 성정을 가진 금원맹주로 이름을 날렸다는 사실은 변함없지요. 이중 각인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연화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공격이 날아오려는 모양이었다. 적비성과의 관계를 끊는 조건으로 방다병과의 각인을 허락하겠단 뜻일까? 하효혜가 충분히 할 법한 제안이었다. 다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제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방에 들어온 후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하효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선생, 내가 언제 그 사람과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적비성을 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어떤 사람인지, 소보를 해칠 만한 인물은 아닐지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 이래봬도 각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오래도록 연륜을 쌓은 터라, 마주앉아 말을 섞어보면 상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답니다. 최소한의 도의는 갖춘 자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효혜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이연화는 문간에서 꿈틀거리는 기척을 느끼고는 대경하여 전음을 날렸다. 지금은 절대 안 돼. 나중에 약속하고 만나! 방문을 턱 잡았던 적비성이 불만스럽게 멈추었다. "선생?" 다급히 쏘아붙이는 표정이 영 좋지 못했는지, 하효혜가 살짝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연화가 얼른 얼굴을 이완시키며 돌아보았다.
"예, 물론이지요. 그럼 금원맹주에게 소식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을 설명하면 금방 당도할 것입니다. 안전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오라 일러두겠습니다."
"고마워요, 선생. 그럼 나는 이제 슬슬 소보를 풀어주러 가지요. 설마 천기당의 소당주라는 녀석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빨리 나오려고 설치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네요."
하효혜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이연화가 얼른 천기당주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섰다. 문간에서 인사를 건네다, 이연화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불렀다. "하 당주." 막 발을 내디디려던 하효혜가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막상 불러놓고 나니 또 말문이 막혀, 이연화는 잠깐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하효혜가 그 등에 한 손을 얹은 채 건넸다. 그 얼굴은 조금 피로해 보였으나, 여느 때처럼 당당하면서도 온건했다.
"선생, 부디 등을 굽히지 마세요. 선생 같은 분이 풀 죽은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종류의 일은 강요로 이룰 수 없다고요. 소보는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스스로의 마음을 쉬이 배신하거나 타협하며 살지 않도록 가르쳤으니, 처음부터 제 허락 같은 것은 무의미했을지도 모르지요."
"과분할 만큼 관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 당주. 방 어르신께서 저와 독대하길 원하신다면 언제든 알려주십시오."
살짝 막힌 목으로 간신히 대꾸하고, 이연화는 하효혜가 떠난 후 방으로 들어와 풀썩 주저앉았다. 비록 확언하지는 않았으나, 하효혜의 말은 한없이 승락에 가까웠다. 이연화가 줄곧 참았던 숨을 크게 토했다. 머리에 열이 올라 어질어질했다. 아직도 자신이 방금 전까지 들은 말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식은 차를 마시는 이연화의 뒤편으로, 줄곧 몸을 숨기고 있던 적비성이 불쑥 들어왔다. 그 표정이 퍽 짜증스러웠다.
"왜 날 막은 거냐? 바로 끝내버리면 될 일을."
"제정신이야? 천기당에 몰래 들어왔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리고 싶어? 남의 집에 침입해서 얘기를 엿듣다가 불쑥 나타나다니, 하 당주가 대체 널 어떻게 보겠어. 이젠 너한테 이 관계의 명운이 반쯤 달린 거나 마찬가지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이연화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빠르게 쏘아붙였다. 긴장한 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 탓인지, 의자에 늘어진 몸이 온통 뻐근했다. 잔뜩 뭉친 어깨를 두드리다가, 이연화는 문득 불안한 기분으로 적비성을 돌아보았다. 금원맹주는 여느 때와 별다를 것도 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선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태도에서, 중차대한 과제를 받은 자의 심각함 따위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연화가 심란한 중얼거림과 함께 뒷목을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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