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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발너붕붕 시골에 범상치않은 외지인이 나타나서 너붕네 집에서 일하는데앱에서 작성
ㅇㅇ
23-11-21 20:33
정말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만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게 보고싶다.
갑작스러웠다.
그는 이 시골집의 별채에서 지내고 매 삼시세끼를 우리 가족과 함께 먹는다.
그러니까 내가 여느때처럼 도시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온 주말 어느날. 그 덩치 큰 남자는 어느새 새 가족이 되어있었다.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처음엔.
형제들 중 나이 지긋한 노부부를 그 누구도 챙기지 않았기에 사회초년생인 내가 주말마다 이 깡시골에 내려왔는데, 저렇게 정정한 남성이 옆에 있어준다면 나도 곧 주말엔 내려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저 이방인을 내 가족에 밀어넣고 나는 빈틈투성이인 내 인간관계를 쫌매보려고 했다.
금요일 밤엔 클럽에서 진탕 술독에도 빠져보고 토요일에는 하룻밤 사이에 친해진 남자와 영화를 본다거나, 혹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새 인연을 만나보는 그런.
실패했다.
도시에서 가장 시끄럽고 화려한 클럽에서도, 남 시선 두려울 것 없는 영화관에서도 또 돈 좀 만져본다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촌스럽고 후덥한 저 남자보다 잘난 사람 하나가 없더라.
그렇게 난 주말이 되기 무섭게 또 어떤 미친 날에는 금요일 저녁에 무리해서라도 본가로 내려왔다.
세 달이 다 되어갈 때도 나와 그는 통성명 하나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저 남자는 지독하리만큼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정확히는 사람에게. 또 더 정확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 번은 눈이 마주쳤다. 꽤 오래.
평소라면 토요일 아침 즘에 들어왔을텐데, 딱 한 번 술에 진창 취해 금요일 새벽 경에 기어들어온 적이 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시간 아닌가.
택시비로 더 낼 수가 없어 정류장에서 내린 채 집까지 빈 손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그 깜깜한 시골길 어귀에 그 남자가 서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검은 덩치에 무섭지 않았냐면 거짓말이지만 술김이었는지 그 남자일껄 알았는지. 혹은 그 남자이길 바랐는지.
아무튼 그가 서있었다. 팔짱을 낀 채 날 짧게 보고는 쉽게 등을 돌려 걸었다. 난 그 뒷모습이 꼴보기가 싫어 갑자기 뛰었다. 그 남자를 지나쳐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미친년처럼.
그러다 철푸덕 나자빠져서 결국 따라 잡혔지만, 남자는 내가 소란스럽게 넘어짐에도 걸음 하나 재촉 않고 평소처럼 느긋하게 걸었다.
그리고는 어쨌더라. 필름이 딱 이때 끊겨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다행이도 다음날 내가 눈을 뜬 곳은 흙바닥이 아니라 내 침대였다.
무뚝뚝하지만.
살갑진 않지만.
친절하진 않지만.
날 좋아해주지도, 예뻐해주지도. 심지어 관심도 주지 않음에도 불편하지 않아서.
매 끼니를 나이 지긋한 우리 엄마에게 얻어먹으면서도 체면이 있어 아빠가 주는 일은 곧이 곧대로 해냈고
이따금씩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냈음에도 생색을 내지 않았고
목에 걸린 금목걸이에 흙이 튀던 구정물이 튀던 신경쓰지 않았고.
생활감 있는 면티에 후줄근한 바지. 흙은 묻었지만 낡진 않은 운동화가 참 좋았다.
그래서 좋았다. 좋아했다 내가.
우리의 만남은 3개월도 채우지 못했다. 만남이라 칭하기도 멋쩍게 나의 일방적인 구애였지만 나름대로 합의된 관계였고 시시콜콜하지만 데이트 비슷한 것들도 했는데.
어쨌든 난 지쳤다.
얼굴 튼 지는 6개월, 교제로는 3개월이 넘도록 난 그에 대해 아는게 없다. 혀도 섞고 몸도 섞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별로 섞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시시한 연인놀이를 바란 건데.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더 나중에 알았지.
난 남자의 등에 매달리는 걸 좋아했다. 등이 넓기도 했고 그 몸이 난로처럼 뜨겁기도 했지만, 이건 감상에 불과하다. 혹은 핑계라거나.
내게 등돌린 남자의 등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
그게 우리 관계의 정체성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다.
난 그에 대해 계속 캐물었다. 그 사람이 궁금했다. 나에게만은 알려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땐 정말 간절했는데 그가 사라진 뒤에 생각해보니 내가 좀 이기적이었을까.
그 사람은 내게 뭘 원하지도, 캐묻지도, 종용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내가 먹던 맛없는 음료를 그가 잘 마시던 음료와 바꿔도 아무말 않았고 약속시간에 한참 늦어도 왜 늦었냐 질타 한 번 없었고 내멋대로 굴어도 싫은 기색 한 번 없었다.
그게 좋았지만, 또 다른 날엔 그걸 무관심으로 느꼈다.
어제까진 울고 불며 화를 내다가도 또 다음날엔 그에 곁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미친년처럼 달려들던 년이 얼굴 두껍게 입 싹 닫고 옆에 있는데도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좋았는데 또 얼마뒤엔 나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다.
헤어질 때도 엉엉 우는 나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도 내가 먼저 뛰쳐나갔다.
몇 년이나 더 지나 돌이켜보자면 내가 무관심이라 느꼈던 건 어쩌면 믿음이었을까. 그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으니까.
가끔 이렇게 그 남자가 그리운 날엔 별채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베란다 창을 바라본다.
짐이 다 빠지고 쓰는 사람이 없이 냉기가 돈다. 오래동안 방치된 마당 물건들인 겨울바람에 쉽게 끼익 거리며 시끄럽게 군다.
그 남자가 살 땐 이 집이 정말 따뜻했는데. 정말 조용했는데.
생각해보면, 내게 아무 조건 없이 옆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은 그 남자 뿐이었다.
그래서 좋아했구나. 그 사람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말년이 안 좋았는지. 다른 형제들이 사업을 해먹고 부모님의 이름으로 사채를 쓴 채로 해외로 뜬 후 얼마 뒤에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그 빚이 향한 건 나였다. 정확히는 빚이 아니라 그 사채업자들.
시골집을 다 깨부수길래 나도 눈이 돌아 덤벼들었다. 미쳤지 진짜. 그 개새끼들이 돌아간 후 난 쑥대밭이 된 거실에서 울다 잠들었다.
다음번에 찾아온 놈들은 전과 다른 놈들이었는데 꽤 점잖게 날 대했다.
그 다음번에는. 난 그냥 집 거실에서 목을 달았다. 줄이 삭았는지 끊어졌나. 눈을 떴을 땐 무서울만큼 높은 천장이 보였다.
아. 나 장기 뜯기러 왔나보다. 하고 다시 눈을 감는데 옆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을 땐 그대로 머리가 시려울만큼 띵해서...
비싸보이는 정장을 입은 모습은 또 완전히 다른사람 같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다.
큰 덩치에 지저분한 갈색머리, 표정 없는 얼굴에 언뜻 보이는 금목걸이. 숨만 오가는 입술 사이.
애가 탈만큼 원했던 재회임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친한척을 하지도, 마지막 이별 때처럼 지랄을 하지도. 기운이 없었다.
죽고 싶어 미치겠을 땐 아무리 반가운 사람을 봐도 우울하더라.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지.
빌리 조직 내려놓고 잠깐 쉬는동안 어쩌다 허니랑 엮였고, 복귀한 후 의도치않게 또 허니랑 엮인 거...
보고싶었던 건 이런게 아닌데...ㅠㅠ
빵발너붕붕 빌리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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